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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우리 모두가 가게 될 길에 관한 이야기, "코끼리와 벼룩"(찰스핸디, 2016년 8월,♥♥♥)

13년간 함께 회사를 다녔던 직장 동료이자 친구가 퇴직을 했습니다. 우리는 사회에서 만났지만 그 우정은 학교 동창들간의 그것보다 더 진했습니다. 치열하고 무서운 전장에서 가슴졸이며 생존하기 위해서, 우리는 서로를 애타게 찾으며 살얼음판의 시름을 나누었습니다. 그렇게 의지하였던 친구의 희망퇴직을 기념하여, 나는 최근에 읽은 명저 "코끼리와 벼룩"이라는 책을 선물하였습니다. 퇴직을 기념하다니, 그렇습니다. 이제 삼십대 중반에 접어든 친구의 퇴직결정에 여타 동료들과 선배들은 아까운 친구가 떠난다며 말렸고, 그의 어머니는 유망하리라 믿었던 딸의 퇴직결정에 끝내 눈물을 보이셨다 했지요. 그렇게 모두가 내 친구의 퇴직을 애도하였지만 나는 그것을 기념하기로 하였습니다. ​우리는 결국 언젠가는 모두 독립생활자, 즉 "..

읽은기록 2021.10.17

리더는 칭찬하지 않는다(기시미 이치로, 2021년 1월, ♥♥)

어릴 때 옆 집 방충망에 구멍을 뚫어놓은 적이 있습니다. 그 집 아들이 창문에서 내다보며 계속 약을 올리자, 내가 여자라고 얕본다는 생각이 들어 분이 오른 나머지 본 때를 보여주겠다며 할아버지 지팡이를 들고 와서 그 방충망에 구멍을 뚫은 것이었습니다. 그 집 아주머니가 우리 집에 와서 방충망 값을 물어내라고 했고, 그 이후의 기억은, 퇴근하신 아버지에게 호되게 혼이 났던 것으로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지금에서야 처음으로 깨달은 사실인데, 그 일련의 기억 속에서 어머니가 나를 나무랐던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분명히 따지러 온 옆 집 아주머니를 상대해야 했던 사람은 아버지가 아닌 어머니였을텐데, 어머니는 그 때의 당혹함을 나에게 전가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엄마와 아빠의 결정적 차이였습..

읽은기록 2021.10.13

이것은 영어 이상의 인생담론,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김민식, 2017년 1월,♥♥♥)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 구사능력은 일종의 기술입니다. 그러니까, 어르신들께서 흔히 "기술 하나만 제대로 있으면 평생 먹고는 살어"라고 하실 때의 그 기술 말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그 외국어 기술이 과할 정도로 중요하게 여겨져서 한 개인의 수학능력과 각종 사회적 클라쓰까지 단정짓는 수단이 되기도 하지만, 어쨋든 엄연히 말하면 기술일 뿐입니다. 단지 기술이기에, 기술자들을 상대적으로 낮게 보았던 그 옛날 고려와 조선에서는 외국어 통역을 담당했던 "역관"들을 중인 신분으로 분류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쨋든 외국어 구사능력은 기술이기에 몸을 쓰는 운동이나 여타 손재주처럼 몸으로 익혀야 합니다. 오래 연습할 수록 좋고, 한번 제대로 몸에 익히면 평생 먹고는 살 수 있습니다. 기술을 향상시키는 데 무엇보다 효과적인..

읽은기록 2021.10.10

환율의 미래(홍춘욱, 2016년 10월,♥♥)

3년 전에 구입한 책을 지금에서야 읽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조금 철 지난 경제서적을 읽는 것도 굉장히 유용하다고 생각하는데요, 과거 한 시점의 예측이 현재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 비교해보며 읽을 수 있고, 결국 그 비교할 수 있는 능력이 종종 내일을 예측하는 좋은 수단이 되기 때문입니다. 믿고 보는 홍춘욱 선생님의 조금은 오래된(2016년판) 저서 "환율의 미래" 역시, 3년 전 그 시절에 보았던 오늘과 지금 보는 오늘이 어떻게 같고 어떻게 다른지 비교할 수 있는 통찰을 주는 책이었습니다. 지금 전 세계 경제는 2008년 이후 13년 째 호황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 책이 나온 이후 코로나19라는 초대형 변수가 터지면서 세계적인 양적완화 정책으로 산소호흡기를 차고 호황을 연명해 나가는 듯한 느낌마저..

읽은기록 2021.10.03

작별하지 않겠다는 각오

나는 어릴 적 슈퍼마리오 같은 컴퓨터 게임을 하다가 내 뜻대로 플레이가 풀리지 않으면 그냥 꺼 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하곤 했다. 누군가와 연애를 하다가도 '이거 느낌이 별론데' 싶으면 가차없이 헤어지자는 선고를 내리기 일쑤였다. 친분을 쌓고 지내던 사람이 아니다 싶게 선을 넘으면 '이건 아니지’ 라며 은근하면서도 단호하게 그 선을 지우고 끊어버렸다. 얼떨결에 입사해서 18년을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도 아직도 하루에 2번은 습관처럼 이제 그만해야지 라는 생각을 한다. 말하자면, 나는 계속 끌어안고 버티며 나아가겠다는 결의보다는 습관적인 작별과 손쉬운 손절에 더 빠른 사람이다. 그런 내가 사랑이든 애도든 계속 나아가겠다는 마음을 단단히 먹었던 경우가 딱 두 번 있다. 한 번은 데려온 지 석 달 쯤 되었을 무렵..

읽은기록 2021.09.10

나의 새로운 반려자전거, “만추”(진주라이딩, 2017년)

드디어 주문한 전기자전거가 자전거포에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낮 2시 17분. 지난 주 연이틀 밤을 새며 근무한 바람에 24시간 자고 싶었지만, 불굴의 의지로 침대의 마수를 떨쳐내고 분기탱천. 쫄바지와 헬멧을 착용하고 가게로 향했습니다. 자전거, 전기충전기, 교체용 안장을 받아들고, 라이딩용 배낭까지 그 자리에서 구매하여 착장한 후, 척척 걸어나와 16km의 라이딩으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마흔을 곧 바라보는 늙은 딸은 늘 네로황제처럼 길게 누워 예능프로 섭렵하기가 유일한 취미였습니다. 그런 딸이 행여나 팔다리가 퇴화되어 카프카의 변신처럼 벌레가 되어버리지는 않을까 할머니가 된 엄마는 늘 걱정이었어요. 그러던 딸이 갑자기 자전거를 잡고 서너시간씩 돌아다니다 오니, 엄마는 그래그래, 그거라도 해, ..

가본기록 2018.10.14

곁에 있어줘, 라고 외치고 싶은(뮤지컬 프랑켄슈타인, 2018년)

프랑켄슈타인이라는 뮤지컬을 보았습니다. 프랑켄슈타인은 인간을 만들어 보겠다는 광기에 사로잡혀, 자기 친구 "앙리"를 죽게 만들고는 그 죽어버린 몸뚱아리를 재료삼아 생명부활의 실험을 합니다. 끼익끼익, 거대한 화덕같은 발전기가 돌아가더니 앙리가 부활합니다. 막상 앙리를 부활시킨 프랑켄슈타인은 그 부활의 기괴함에 당황하여 앙리를 다시 죽이려 합니다. 가까스로 탈출한 앙리는 자신을 창조하고 동시에 죽이려했던 프랑켄슈타인을 향해, 근원적인 그리움과 증오심의 양가감정으로 평생 그 뒤를 좇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그의 손에 죽임당하면서도 또한 그를 향한 복수를 완성하지요. 바로 프랑켄슈타인을 새하얀 북극에 세상천지 아무도 없이 홀로 갇히게 두는 것입니다. 북극에 갇힌 프랑켄슈타인은 자신이 창조한 피조물 앙리의 시체를..

가본기록 2018.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