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켄슈타인이라는 뮤지컬을 보았습니다. 프랑켄슈타인은 인간을 만들어 보겠다는 광기에 사로잡혀, 자기 친구 "앙리"를 죽게 만들고는 그 죽어버린 몸뚱아리를 재료삼아 생명부활의 실험을 합니다. 끼익끼익, 거대한 화덕같은 발전기가 돌아가더니 앙리가 부활합니다. 막상 앙리를 부활시킨 프랑켄슈타인은 그 부활의 기괴함에 당황하여 앙리를 다시 죽이려 합니다. 가까스로 탈출한 앙리는 자신을 창조하고 동시에 죽이려했던 프랑켄슈타인을 향해, 근원적인 그리움과 증오심의 양가감정으로 평생 그 뒤를 좇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그의 손에 죽임당하면서도 또한 그를 향한 복수를 완성하지요. 바로 프랑켄슈타인을 새하얀 북극에 세상천지 아무도 없이 홀로 갇히게 두는 것입니다. 북극에 갇힌 프랑켄슈타인은 자신이 창조한 피조물 앙리의 시체를 껴안고 울부짖습니다. 제발, 다시 살아나라고. 자신을 홀로 내버려두지 말라고.
종종 새벽 한두시가 넘어 집으로 돌아오는 외진 길을 운전할 때면, 혹시 귀신이라도 좇아올까 싶어(?) 백미러를 들여다보게 됩니다. 그저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새까맣기가 너무 새까매서 어쩔 땐 백미러가 천장으로 접혀있나 하고 착각할 때가 있습니다. 미러는 제대로 후면을 비추고 있는데도 길이 하도 칠흙같이 어두운데다가 앞뒤로 오가는 기척이 하나도 없으니 그런 착각이 드는 것입니다. 혼자 살아간다는 것은, 그런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앞에도 뒤에도 아무도 없는 먹색의 밤길을 걸어가는 일. 제대로 놓여있는 백미러를 두고 접혀있는건가? 하고 혼잣말을 하고는, “백미러는 정상이야. 지금 길이 까맣게 어두워서 그런 것 뿐이야.”라고 바로잡아 일러주는 누군가조차 없이, 그런 길을 걸어가는 일. 혼자 살아가는 일은 때로는, 먹색의 밤길처럼 앞길을 메우고 뒷꽁무니를 따라오는, 막중한 고립감과 대결해야 하는 일인 것입니다.
프랑켄슈타인은 아무에게도 이해받지 못한 마음 때문에 광기어린 실험가가 되었습니다. 그의 피조물 앙리는 홀로 내버려진 절망감 때문에 또한 괴물이 되어버렸습니다. 앙리는 프랑켄슈타인을 죽음보다 더 무서운 북극의 고립에 가둔 채 죽어버렸고,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이어도 좋으니 앙리야, 다시 살아나, 라고 울부짖으며 극은 막을 내립니다.
혼자서 내키는 대로 신나게 살다가도 잠자리에 들 무렵이면, 모두가 어디론가 각자의 세계로 가버리고 나만 남겨지고 있다는 생각에 불면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누군가는 그렇게 말했습니다. 재앙같은 고독이라고. 그 재앙같은 순간들을 계속해서 통과하다보면, 마음 속에 괴물이 하나쯤은 자리잡게 됩니다. 잡담으로 시시덕거리는 시간 따위 전혀 없이도 일주일을 버틸 수 있는 무감각이라든가, 엘레베이터 열림버튼을 누르고 기다려주는 친절함은 어디론가 팔아먹어 버린 듯한 무정함이라든가, 혹은 절대로 먼저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를 표하지 않고 팔짱부터 끼는 자기방어라든가 하는. 누구의 도움도 필요없고 또한 누구를 도와줘야 할 품도 없이 홀로 걸어가는, 차가운 양철괴물 정도 되려나요.
그 양철의 냉기가 스스로도 차갑고 북극만큼 춥습니다.그러니까, 괴물이어도 좋으니 앙리야, 다시 살아나, 다만 곁에 있어줘, 라고 누구에게라도 외치고 싶은 그런 날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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