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에 구입한 책을 지금에서야 읽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조금 철 지난 경제서적을 읽는 것도 굉장히 유용하다고 생각하는데요, 과거 한 시점의 예측이 현재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 비교해보며 읽을 수 있고, 결국 그 비교할 수 있는 능력이 종종 내일을 예측하는 좋은 수단이 되기 때문입니다. 믿고 보는 홍춘욱 선생님의 조금은 오래된(2016년판) 저서 "환율의 미래" 역시, 3년 전 그 시절에 보았던 오늘과 지금 보는 오늘이 어떻게 같고 어떻게 다른지 비교할 수 있는 통찰을 주는 책이었습니다. 지금 전 세계 경제는 2008년 이후 13년 째 호황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 책이 나온 이후 코로나19라는 초대형 변수가 터지면서 세계적인 양적완화 정책으로 산소호흡기를 차고 호황을 연명해 나가는 듯한 느낌마저 듭니다. 전 세계적으로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는 상황에서 우리나라에서는 국지적으로 주택 공급의 감소까지 겹치면서 주택가격 폭등에 불을 붙이게 되었구요.
그러나 이 호황도 이제 곧 끝나지 않을까요? 얼마전 중국의 헝다그룹 파산 위기가 보도되었습니다. 글로벌 경제 사슬의 가장 끄트머리에 있는 우리나라에 상당한 폭풍을 몰고 오면서 환율이 한 차례 오르고 있고(이미 올해 연고점 1,189원을 돌파), 주가가 하락하는 시나리오도 예상할 수 있겠지요. 연말부터는 미국의 테이퍼링이 시작되면서 환율상승세가 더욱 가속화 될 수도 있구요. 경기 수축기에 진입하면서 부동산 버블 역시 빠질 수 있기에, 이제는 무리한 부동산 매입을 위한 영끌을 멈추고 부동산 가격 하락을 헷지하기 위한 자산 구성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가 된 듯 하네요.
모두가 눈만 뜨면 집, 집, 하던 시대에 새롭고 다른 생각을 하게 만든 책이라는 점에서 유용했던 책입니다만은, 한참 아무것도 모르는 비전문가 입장에서는 환율이 진짜 어려운 주제 중 하나인데, 몇가지 배경 설명이나 경제메커니즘의 설명이 조금 생략되면서 앞 뒤 맥락 연결이 조금 어려운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렇더라도 "채찍효과", "유럽의 재정위기", "자산배분의 원칙" 에 대해 주의를 기울여 읽어보세요. 먼 미래까지는 아니더라도 가까운 내일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갖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하트바구니 두 개 드려요.
주요 내용을 아래에 정리하였으니 킵해두세요!
환율이 오르면?(=달러강세, 원화약세)
우리나라 스마트폰이 미국에서 500달러로 가격이 책정되어 있다고 해 볼까요. 1달러가 1,000원에서 1,200원으로 오르면, 환율이 바뀌면서 원래 50만원을 벌다가 60만원을 벌어들이게 되지요. 더 많이 벌어들이면서 경상수지 흑자가 쌓이고, 더 많은 원화가 돌기 시작하면서 우리나라 통화량이 늘게 되고, 물가가 상승하게 됩니다.
반대로 환율이 내리면?(=달러약세, 원화강세)
1달러가 1,200원에서 1,100원으로 떨어진다면 어떻게 될까요? 스마트폰 가격이 500달러일 경우 벌 수 있는 원화가 60만원에서 50만원으로 줄어들게 되고, 수입이 줄면서 경상수지가 떨어지고, 우리나라 통화량이 감소하면서 물가가 하락하게 되겠죠.
환율이 계속 이렇게 변하면서 국내 경제가 외부 세계의 영향을 많이 받고 흔들리게 되는데, 만약 우리나라가 변동환율제도가 아닌 고정환율제도를 채택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요?
만약에 고정환율제도였다면, 우리나라 금리가 떨어지고 미국 금리가 오를 경우 투자자들이 이자가 싼 우리나라에서 돈을 빌려서 달러로 바꾼 후 이자를 많이 주는 미국에 투자하려고 할 것이고, 모두가 원화를 달러로 바꾸고 싶어하면서 달러 강세가 나타날 겁니다. 이에 대응하여 우리나라 정부는 환율을 떨어뜨리기 위해서 달러를 팔고 우리나라 원화를 매입해야 하구요. 이 과정에서 외환보유고가 급속히 고갈되겠죠. 이를 피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금리를 그대로 추종할 수 밖에 없게 됩니다. 고정환율제도가 반드시 더 낫다고 볼 수 없는 이유입니다.
그렇다면 2000년대 우리 경제를 흔들었던 유럽 재정위기는 왜 발생했을까요?
1999년 유럽통화동맹 출범하면서 유럽 각 국의 중앙은행 기능이 정지되고 유럽 중앙은행의 정책금리가 동일하게 적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정책금리가 가장 낮은 독일금리가 전 국가에 적용되면서, 그 전까지 고금리였던 남유럽 국가들은 이득을 누렸고 특히 금리가 낮아지면서 경제가 과속성장하기 시작하고 인플레이션이 나타났어요. 실질금리(명목금리-물가상승률)가 마이너스 상태를 유지하면서 2000년대 중반 주택가격이 급등하고 건설업계에는 호황이 찾아왔으며 경제 전반으로 강력한 상승효과를 불러왔지요. 저축이 줄어들고 투자가 늘면서 경상수지(=저축-투자) 적자가 쌓이기 시작하였고, 그러던 중 갑작스런 글로벌 불황으로 주요 수입원인 관광수입이 축소하는 데다가 외채 이자 상환기가 도래하면서 재정위기가 발생한 것입니다.
유럽 재정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유로를 버리고 각국 통화로 복귀하는 방법과, 물가와 임금, 지가를 눌러서 경쟁력을 회복시키는 방법이 있지만 유럽중앙은행이 선택한 방법은 인플레이션을 유도하여 과도한 부채를 털어내고 유로화를 평가절하 하는 것이었어요. 장기채권의 가격은 매년 이자지급액을 현재 시장금리로 나눈 값으로 결정된다고 합니다(매년 이자지급액 ÷시장금리). 따라서 금리와 채권가격이 정반대 추세로 움직이고, 물가 상승이 기대되면 시장금리는 상승해서 채권가격은 떨어지게 되면서 갚아야 할 부채도 줄어드는 것이지요.
유로화의 통화공급 확대정책은 당분간 계속될 것입니다. 그러나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아지면 독일 정부에서 가만히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으로, 유로화의 안정성은 당분간 지켜보아야 할 상황이라고 하네요.
그럼 엔화의 사정은 어떨까요?
엔화가 강세를 나타나면 우리나라 주가가 상승한다는 공식은 깨진 것으로 보여집니다. 한국기업 경쟁력 강화로 엔화 가치가 떨어진다고 해서 우리나라 기업 실적이 악화하는 현상이 없어졌기 때문이에요. 오히려 세계 경제가 불황일 때 엔화 강세가 나타나는데, 이는 엔캐리트레이드(금리가 낮은 엔화를 차입하여 고금리 국가에 투자하는 것) 때문이에요. 세계 경기가 하락 하면 고금리 신흥국가에 투자되었던 자금이 회수되면서 엔화 강세가 나타나는 것이죠. 따라서 엔화는 달러보다도 더욱 안전자산의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일본은 경제불황기에 엔화 강세로 이중고를 겪었습니다. 과거 버블붕괴 시 일본정부가 금리를 인하하여 경기를 부양하러 했으나 엔화 강세로 그 효과가 미미했어요. 최근에는 아베노믹스로 확고하게 통화확장 정책을 밀어붙인 덕에 엔화강세가 예측되고 있어요.
중국은 고정환율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국가입니다(엄밀하게 말하면 바스킷통화제도). 그러한 중국이 2015년 위안화 평가절하를 단행한 적이 있어요. 그 무렵 선진국 경기가 부진해지면서 예전에 비해 수출실적이 썩 좋지 않았고, 2012년도부터 도로, 항만 등에 대한 대규모 투자가 이루어지면서 투자 과잉상태에 있었으며, 물가 상승률 역시 마이너스 상태였지요. 경기부양을 위해서 금리를 인하하였지만 미국과의 고정환율제도 때문에 오히려 자금이 대거 이탈해서 통화량 감소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져있었습니다. 경기 부양을 위해 쓸 수 있는 또 다른 카드인 재정정책 역시 더 이상 어려웠는데, 지방정부의 재정이 이미 부실해진 상태였기 때문이지요. 결국 선택은 위안화의 평가절하 뿐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 외환위기가 다시 발생할 가능성은 낮다고 합니다. 변동환율제도를 채택하고 있어서 탄력적인 대응이 가능하고, 경상수지 흑자가 지속되고 있어서 경제 충격에 대응가능한 수준으로 외환보유고도 풍부하기 때문이에요. 그렇지만, 위기발생 가능성이 낮다고 해도 경기의 수축과 확장주기에 따라 찾아오는 불황은 피할 수 없다는 것이 저자의 단언입니다. 세계 경제는 2007년 이후 10년이 넘게 확장일로에 있어 왔고, 확대된 경제는 수축의 주기를 거치기 마련입니다.
우리나라가 유독 큰 폭의 호황과 불황을 피할 수 없는 이유는 선진국의 소비에의 의존도가 크기 때문입니다. 선진국일수록 소비 비중이 커서 GDP의 2/3 수준을 소비가 차지하고 있으며, 2009년 기준으로 G7 국가가 세계 소비시장의 61%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는 공급사슬 채찍의 가장 끝에 위치하고 있어서 "채찍효과”를 피할 수 없어요. 예를 들어, 미국 소비 1% 늘어나면 우리나라 수출은 5~10% 증가해요. 이는 소매점에서 도매점으로 이어지면서 수요가 왜곡되어 점차 증폭되고, 대량주문방식에 따라 번들로 수요가 전달 될 수 밖에 없으며, 주문발주에서 발주시행까지의 시차가 존재하기 때문이지요.
이러한 채찍 효과를 알고 있는 글로벌 투자자들은 선진국 소비가 둔화하면 한국같은 개도국 자산을 집중 매도하고, 선진국 경기가 좋아지면 개도국 자산을 집중 매수합니다. 개도국들의 급격한 실적악화나 실적개선이 전망되기 때문이에요. 이러한 이유로 세계경제가 나빠지면 안전자산인 달러 선호로 환율이 오르고, 한국 기업의 주가가 떨어지는 것이죠.
앞으로의 환율 전망은 어떻게 될까요? 경상수지 흑자와 높은 외환보유고는 당분간 유지될 것이고, 저유가 흐름으로 경상수지 흑자 역시 지속될 것이라고 저자는 예측합니다. 지속된 호황으로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지고, 실질금리 상승으로 당분간 환율 강세 시점이 찾아올 것이라고 하네요. 물론 환율이 실질적으로 저평가 된 상황이고 경상수지 흑자가 지속되고 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환율은 다시 하락안정세로 돌아올 것이구요.
극심한 경기변동과 환율변동 속에서 자산을 지키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자산을 지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운용 방식이나 종목이 아닌 자산의 배분이라고 저자는 이야기 합니다. 탈무드에서는 모든 자산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1/3은 토지, 1/3은 사업, 1/3은 예비적 용도에 쓰라고 권합니다. 대형 연기금 자산운용 결과를 조사하니, 종목선정과 매매방법이 수익률에 미치는 영향은 7%에 불과하고, 자산배분이 전체 수익률 91%를 결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채찍의 끝”에 위치한 한국의 투자자들에게, 한국의 자산과 반대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은 해외 자산이에요. 특히 한국의 주식과 반대의 상관계수를 갖는 자산은 원/달러 환율과 미국 국채이고, 서울 강남아파트와 명확하게 반대의 상관계수를 갖는 것은 미국 주가라고 하네요. 즉, 한국에 부동산이 있으면 미국의 주식에 투자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죠. 자산의 적정한 배분으로 수익률 변동성을 낮출 때, 급격한 하락기와 상승기를 오가는 부침에 관계없이 단타매매를 피하고 장기투자를 감내하여 오히려 플러스의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 저자가 주는 소중한 조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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