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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우리 모두가 가게 될 길에 관한 이야기, "코끼리와 벼룩"(찰스핸디, 2016년 8월,♥♥♥)

썸머에디션 2021. 10. 17. 23:29

 


13년간 함께 회사를 다녔던 직장 동료이자 친구가 퇴직을 했습니다. 우리는 사회에서 만났지만 그 우정은 학교 동창들간의 그것보다 더 진했습니다. 치열하고 무서운 전장에서 가슴졸이며 생존하기 위해서, 우리는 서로를 애타게 찾으며 살얼음판의 시름을 나누었습니다. 그렇게 의지하였던 친구의 희망퇴직을 기념하여, 나는 최근에 읽은 명저 "코끼리와 벼룩"이라는 책을 선물하였습니다. 퇴직을 기념하다니, 그렇습니다. 이제 삼십대 중반에 접어든 친구의 퇴직결정에 여타 동료들과 선배들은 아까운 친구가 떠난다며 말렸고, 그의 어머니는 유망하리라 믿었던 딸의 퇴직결정에 끝내 눈물을 보이셨다 했지요. 그렇게 모두가 내 친구의 퇴직을 애도하였지만 나는 그것을 기념하기로 하였습니다. ​우리는 결국 언젠가는 모두 독립생활자, 즉 "벼룩"의 삶을 살게 될 것이고, 나의 친구는 그 삶을 먼저 시작하게 된 것 뿐이기 때문입니다.

벼룩의 다른 표현일 수도 있겠습니다. 내 자신을 야구리그의 자유계약선수, 즉 FA와 다름없다고 자각하기 시작한 것은 2년 전 회사의 승진심사 때 부터였습니다. 나는 그 심사에서 물을 먹고 보기좋게 탈락했더랬습니다. 승진이 된 동료들의 면면을 살펴보니 다들 될 만한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들은 상사와 동료들이 필요로 하는 어떤 "자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자원"은 아이디어이기도 했고 정치력이기도 했으며 문제해결능력이기도 했지요.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자원을 내 놓는 사람들이 승진을 하는 것이 자명한 시장이치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검증 통과에 실패하고 나서야 퍼뜩 눈을 뜨게 된 것입니다. 비교적 고용이 안정된 직장에 다니면서 코끼리에 딱붙은 눈 먼 벼룩처럼 넋을 놓고 지내고 있었지만, 결국 이 회사도 엄중하고 차가운 FA시장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말입니다.


​FA시장에서 내어놓을 것이 없다면 나는 아부나 영혼팔기로 생을 연명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삶의 존엄성이 망가지지요. 따라서 내가 어떤 구력과 스윙을 보유하고 있는가, 또한 그것이 얼마나 대체불가성을 가지고 있는가가 내 바람직한 생존의 핵심일진대, 생각이 이쯤 이르게 되면 굳이 회사라는 틀 안에 갇혀서 내 구력과 스윙을 연구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세상이 보편적으로 수요하게 될 나만의 자원이 있다면, 회사에서 뿐만 아니라 퇴직 이후의 삶에서도 어느정도의 존엄적인 삶을 챙겨나갈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당장의 당면과제는 매일의 과업 속에서 나만의 자원을 어떻게 발견하여 연마해 낼 것인가로 바뀌게 됩니다. 이에 대한 삶의 지혜는 어머니의 지난 날에 들어있습니다. 나의 어머니는 평생 강인한 벼룩의 삶을 살아오셨습니다. 당신이 꼭 내 나이의 젊은 엄마였을 때, 부족한 가계에 한 푼이라도 보태고자 손바느질을 시작하였고, 그 솜씨가 동네에 소문이 나면서 본격적으로 장사를 시작하셨습니다. 딸 둘을 모두 취업시키고 남편이 은퇴한 노년에는 그 바느질 솜씨로 동네 수선집을 인수하여 장사수완을 발휘하셨지요. 여상을 졸업하고 손기술로 살아오신 엄마는 대학을 나와 대기업에 다니는 두 딸보다 훨씬 더 유능하고 용감했습니다. 딸들이 당신보다 더 나은 삶을 살기를 원하며 뒷바라지 하셨지만, 결국 ​내가 가야할 길은 내 어머니가 살았던 단단한 독립생활로의 회귀입니다.



어머니의 삶은 당신이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찾아내고 그 일에 치열하게 집중하며 새로운 시도에 주저하지 않는 용감한 삶이었습니다. 반면에 나처럼 계속해서 거대기업의 울타리안에서만 살아온 사람들에게 저자는 일갈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때 누리는 절대적 만족감과, "유능하다"는 타인의 평가로부터 누리는 상대적 만족감을 혼동하지 말라고. 그 혼동으로부터의 자각이 나만의 자원을 찾기 위한 첫 단추라는 것입니다. 나의 어머니는 유능하다는 평가가 아닌, 생존을 위한 자원 찾기에 집중한 셈입니다.

독립생활자인 벼룩이 되어 자유를 누리는 상상은 정말이지 유쾌합니다. 직장생활의 가장 큰 고통은 내 시간의 주권이 나에게 없다는 데에서 비롯합니다. 모처럼 이른 아침 출근하여 조용히 나만의 계획을 시작하려는데, 때마침 나타난 상사가 갑자기 회의를 하자는 식 말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벼룩의 삶이 설레이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이 책에서 말하듯, 명함없는 벼룩으로서 마주하게 될 세상의 맨 얼굴이 주는 공포감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지금껏 코끼리가 주는 명함 뒤에서만 살아온 나는 솔직히 그 공포감을 전혀 알지 못합니다. 공포감이 얼마나 큰지 헤아릴 수 없다는 자체가 가장 근원적인 공포이기도 하지요. 저자는 그러한 공포감을 극복하기 위한 비결로 사회적 연대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독립생활자의 시간 포트폴리오를 짤 때 자원봉사나 공적사명을 위한 활동에 시간을 배분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특히 어떤 진리에 천착하는 사명감은, 공포감 극복의 수단임은 물론이거니와 독립생활의 단단함을 결정짓는 비결이라는 조언과 함께 말입니다.



올 해도 이제 두 달이 남아 있네요. 올 한해 내가 아루고자 세웠던 계획들을 따져보니 절반을 해내었고 절반은 실패했습니다. 벼룩의 눈으로 다시 보니, 해낸 일들은 오히려 나와 맞지 않으니 멈추어야겠고, 실패한 일들에 차라리 집중했더라면 훗날 벼룩으로 살기에 도움닫기가 되었을 뻔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의 친구에게 그러하였듯 내게도 언제 불현듯 벼룩으로 살기를 용단해야 할 때가 찾아올지 모를 일입니다. ​새해에는 벼룩의 계획을 세워보아야 되겠습니다. 친구에게 써 준 나의 말을 내 자신에게도 다시 한번 써 보면서요. "뛰어봤자 벼룩이라고? 이젠 벼룩들의 시대야!"라고.

언젠가는 우리 모두 회사의 명함을 내려놓고 날 것의 내 자신, 독립생활자, 즉 "벼룩"의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단지 시간의 문제일 뿐 언젠가는 직면하게 될 벼룩의 삶에 대해 화두를 던져주었다는 점에서, 이 책에 하트 세 바구니를 가득 부어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