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찌라 해 아래는 새 것이 없나니"(전도서 1장) 라는 구절처럼, 인간의 긴 역사는 원형의 되풀이입니다. 그렇기에 가까운 내일을 예측하기 위해 지나간 과거의 원형이 어떠했는지 돌아보는 것은 매우 의미가 있겠지요. 돈에 관한 50가지 역사적 사건은 서로가 서로에게 때로는 원인이었고, 때로는 결과였으며, 어쩌면 또 다른 모습으로 지금도 반복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책을 통해 그 50가지 사건들을 읽고 이해한 바를 열 가지 이슈로 정리해 보았어요.
1. 시작은 금을 향한 인간의 근원적 욕망이었습니다. 금에 대한 로망을 바탕으로 금속화폐가 주조되기 시작하였습니다. 경제활동이 활발해지면서 금과 은이 점점 부족해지고, 화폐가 돌지 않으면서 물가가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금과 은을 더 찾겠다는 갈망으로 1492년 콜럼버스나 바스코다가마 같은 위대한 항해자들이 대항해 시대를 열었습니다. 스페인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은광을 발견하였고, 유럽으로 대거 은이 유입되면서 스페인의 페소화를 중심으로 유럽물가가 크게 상승하기 시작했습니다. 수백 년간 꿈적않던 물가가 새로운 패턴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이른바 16세기 "물가혁명"의 시대였습니다. 스페인의 은은 명나라로 흘러들어갔습니다. 신항로가 개척되면서 동양의 비단, 후추, 도자기에 대한 유럽의 수요가 증가하였고, 유럽에 비해 은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높았던 중국에서 유럽인들이 차익을 누릴 수 있었기 때문에 무역은 더욱 활발하여 졌습니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은이 축적되던 명나라의 생활수준은 인간개발지수(HDI)로 측정하였을 때 유럽의 그것보다 더 높았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2. 그러나 이 물가혁명, 항해혁명의 시대의 진짜 수혜자는 네덜란드였다고 합니다. 국제 무역의 발달에 힘입어 메디치 가문같은 자본주의적 거대상인이 출현하였고, 이들은 주로 환어음 방식으로 거래를 하였습니다. 암스테르담에 이 환어음을 할인해주는 암스테르담 은행이 1609년에 등장하였습니다. 네덜란드는 다른 유럽국가에 비해 장원제도가 발달하지 않아서 토지의 귀족집중도가 상대적으로 낮았고, 스페인의 억압으로 정부의 운신폭이 좁아 민간을 중심으로 하는 해외개척 움직임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러한 열망이 세계 최초의 주식회사인 동인도주식회사가 설립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무한책임의 시대에서 유한책임의 시대로 경영의 새로운 혁명이 시작된 것입니다. 동인도회사는 최초 설립 시 정관상 21년을 연한으로 두고 있었는데, 이 시간은 당시에는 영원의 시간과 같은 의미였지만 결과적으로는 수백여년간 지속되었다고 합니다.
3. 그 무렵 영국에서는 1688년 명예혁명을 거쳐서 네덜란드의 윌리엄 3세가 영국 국왕이 되었고, 네덜란드의 금융제도를 영국에 도입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암스테르담 은행에 "대출기능"을 확장한 "영란은행"이 영국에 설립되었고, 영란은행은 영국의 모든 부채를 인수하는 대신에 화폐발행권을 얻게 되었습니다. 실제 보유한 금 이상의 화폐주조권으로 막대한 주조차익을 누리는 동시에 영국 정부로부터는 이자를, 일반 대중으로부터는 예금을 수취하는 은행이 된 것입니다. 정부의 신뢰도 증가에 자본시장이 안정되면서 영국의 국채금리는 16세기 16%에서부터 지속적으로 하락하여 19세기 4% 수준을 유지하게 됩니다. 게다가 영국은 청나라에 아편을 수출하면서 막대한 자금을 거두어들이게 되지요. 안정된 자본환경이 산업혁명을 싹틔우는 씨앗이 됩니다.
4. 특이할만한 점은, 영국의 낮은 인구압이 산업혁명을 가능하게 하는 동인이 되었다는 점입니다. 유럽인들의 주식이었던 밀은 아시아인들의 주식이었던 쌀에 비해 파종량대 수확량이 낮아서 유럽인들은 아시아인들보다 기근이나 아사의 위험에 훨씬 더 많이 노출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명조에서 청조에 이르는 동안 중국, 일본의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반면, 유럽의 인구는 크게 증가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아시아에서는 저렴한 인건비를 바탕으로 하는 "근면혁명"이 이루어지는 동안 유럽, 특히 영국에서는 높은 인건비를 극복하기 위해 기술력을 바탕으로 하는 "산업혁명"이 태동하게 되었다는 점도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5. 산업혁명으로 자본과 기술이 모이고, 특히 예금의 집중과 규모의 경제로 기축통화를 보유하게 된 영국은 세계 2차대전이 발발하였을 때 연합군과 연대하여 런던, 뉴욕의 금융중심지에서 전쟁자금을 조달합니다. 반면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자국의 중앙은행을 통해서 화폐를 발행하며 조달하다보니 결국에 한계에 부딪히게 되지요. 전쟁 이후 독일은 월 50%씩 물가가 오르는 하이퍼인플레이션을 경험하게 됩니다. 어마어마하게 찍어낸 화폐로 인해 자본수지 적자가 쌓인데다가 막대한 배상금을 선고받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어렵기로는 승전국인 영국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전후 경제가 회복되지 않고 있었고, 독일로부터의 배상금도 받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6. 이 때의 구원투수가 바로 미국입니다. 영국과 혈맹관계였던 미국은 기꺼이 영국의 1,200만 파운드와 미국의 금을 교환해줍니다. 그리고 영국의 경상수지 개선을 위해서 금리를 인하하고, 통화량을 확대하여 경기를 부양하게 됩니다. 이 상태가 지속되자 미국의 경기가 과열되기 시작합니다. 주가가 급등하자 투자자들이 빚을 내어 레버리지 투자를 하게 되고, 뉴욕연방은행은 주식시장의 거품을 제거하려는 명분으로 금리를 인상합니다. 모든 거품을 제거하자는 "청산주의"의 기치하에 지속적으로 금리를 인상하는 와중에 1929년 경제대공황이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이 때 천 여개의 은행이 파산하지만, 미국 정부는 이를 구제하지 않고 그대로 둡니다. 당시 미국 정부는 금본위제에 대한 집착으로 어떻게든 금리를 높여서 금의 해외유출을 막아야 한다는 위기의식에 사로잡혀 있었고, 그래서 금리를 낮추지 않았습니다.
7. 은행의 파산이 줄을 잇자 사람들이 예금을 찾는 뱅크런이 발생하였고, 돈이 돌지 않으면서 디플레이션이 찾아옵니다. 반면 독일은 1931년에 진작 금본위제를 포기하고 금리를 인하하며 재정지출을 확대하여 경제를 회복하였습니다. 이 때 비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게 됩니다.
8. 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체제에서 미국은 고정환율제도를 유지하는 대신에 우방국들에게 교역로를 보장해주는 엄청난 혜택을 주게 됩니다. 이 덕분에 일본과 독일의 경제가 급성장하게 되고, 미국은 만성적자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금이 부족한 상태에서 미국이 계속해서 화폐를 발행하다보니 결국 1931년 닉슨 정부는 금본위제를 포기하였습니다. 일시적으로 금값이 폭등하였으나, 금본위제로부터 자유로워진 각 국의 중앙은행이 제 역할을 하기 시작하면서 물가는 결국 안정을 찾게 되었습니다.
9.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만성적자가 지속되자 일본과 독일, 미국은 1985년 플라자합의에 이르게 됩니다. 미국의 만성적자를 해결하기 위해서 일본엔화와 독일의 마르크화를 평가절상하고, 금리를 인하하는 합의였지요. 엔화 평가 절상으로 일본의 수출경쟁력이 약해진 대신에, 일본의 금리 인하로 내수 투자가 증가하면서 부동산, 리조트 등의 가격이 급등하게 됩니다. 1987년 미국의 블랙먼데이로 주가가 폭락하자, 미국은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세계 주요국에 동반 금리 인하를 또 다시 요청합니다. 이 바람에 일본은 금리를 인상해야 할 시점에 또 다시 인하를 하게 되면서, 버블이 발생하게 된 것이지요. 일본의 주택가격은 전 세계 부동산 하락기에 혼자 갈라파고스처럼 급등하였고, 일본 정부에서 과열을 진정시키기 위해 금리를 6%까지 올리는 와중에 건설활황기에 투자된 주택의 과잉공급까지 겹치면서 결국 버블 붕괴에 이르게 됩니다. 버블의 붕괴로 소비심리가 사라지면서 장기적인 불황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10. 우리나라는 1945년 이후 독립한 국가 중 국민소득 1만 4천달러를 달성한 단 둘 뿐인 국가 중 하나입니다(타이완과 함께). 해방 직후 미 군정이 조선총독부에서 보유하고 있던 토지를 몰수하여 일반 농민에게 분배하였습니다. 소작에 허덕여오던 농민들이 자기 땅을 소유하게 되면서 농업생산력이 크게 증가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농업은 수확체감의 법칙이 있기 때문에 경제규모 증가에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제조업을 육성하기 위해 사채이율이 60%에 달하던 시대에 수출기업에게는 6~8%의 이율로 대출을 해 주며 수출을 장려하였습니다. 베트남 전쟁의 운도 작용하였습니다. 효율적으로 전쟁물자를 보급하기 위하여 컨테이너선을 도입하는 해운혁명이 시작되었고, 우리나라와 일본에 수출활로가 생긴 것입니다. 급성장한 우리 경제는 1997년 고정환율제도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자본시장을 개방한 탓에 외환이 급격히 고갈되면서 IMF 위기를 맞이하기도 하였습니다. 이후 자유변동환율제도로 이전하면서 중앙은행이 금리조절이라는 강력한 통화정책 수단을 갖게 되었고, 경기변동 진폭이 줄어들게 됩니다. 외환위기 이후 지금껏 경상수지 흑자를 유지하고 있는데, "저축-투자=경상수지"라는 공식으로 볼 때 저축이 많고 투자가 적은, 즉 돈이 돌지 않는 구조라고 볼 수도 있다고 합니다. 건전재정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저축을 줄이고 투자를 늘리는 과감한 통화정책이 필요하다고 저자는 조언합니다.
이 복잡다단한 사건들의 결론은 역사의 중요한 기점마다 정부의 통화정책이 국운을 결정하고 역사의 흐름을 바꾸었다는 것입니다. 즉, 금리를 올리고 내려야 할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제 때 시행된 금리정책이 미래를 결정하였던 것이지요. 또한 각 국 정부의 선택으로부터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음을 알 수 있어요. 상호간 경제 의존도가 더욱 높아진 오늘날에는 국가별 연대가 앞으로 더욱 중요하겠지요. 많은 전문가들이 향후 인플레이션 압박이 커지면서 금리인상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최근 대거 지정한 3기 신도시 등의 주택공급이 향후 2~3년 후부터 가시화 되면서 5년 이후 주택 공급량도 급등할 것입니다. 금리인상기에 급등하게 될 주택공급량, 그 커브곡선은 이 책에서 분석한 일본의 버블붕괴 직전의 그림과 상당히 유사함을 발견합니다. 다만 내수위주의 경제인 일본과는 다르게 수출 주도형 경제구조를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환율상승의 변수가 또 다르게 작용할 수도 있겠지요.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 그 사이 어디쯤의 기로에 서게 될 우리 경제, 그리고 거대한 역사와 돈의 흐름 앞에 너무도 작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어떻게 대비해야 할지 각성하게 해 주는 책입니다. 홍춘욱 선생님의 책은 역시 좀 어려워서 필기하고 정리를 하며 읽어야 했습니다만, 그런 점에서 하트바구니 두 개 담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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