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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농부의 금융농심, "존리의 부자되기 습관"(존리, 2020.1월, ♥♥)

썸머에디션 2021. 10. 27. 22:47

최근에 본 유튜브 클립 중 인상적이었던 클립 하나가 있는데요, 바로 "체인지 그라운드" 채널에 올라온 홍춘욱 선생님의 "가난과 갑질로부터 벗어나려면 절대 필요한 1가지"라는 제목의 동영상입니다. 특히 기억에 남는 부분이 "내가 약하면 남이 나를 다치게 한다"는 홍춘욱 선생님의 말씀입니다. 뜻인 즉은, 홍춘욱 선생님의 가난했던 꼬꼬마 사회초년생 시절, 전세금을 빼고 신용대출까지 받아서 쏟아부은 주식투자에서 폭망한 후 '나는 이것밖에 안돼, 내가 이렇지 뭐' 하며 쭈글이로 살았던 그 때, 소시오패스였던 직장 상사마저 홍춘욱 선생님의 쭈글한 마음상태를 무섭게 알아보고는 동네 북처럼 마구 괴롭혔다는 것이지요. 쉽게 말해 만만하게 보였다는 것입니다. 저의 마음 속 경제선생으로 삼고 있는 분에게도 한 때 그런 추운 시절이 있었다는 것과, 그 시절을 극복하고 경제적 자유인으로 독립하여 살아간다는 그 사실 자체로 그 어떤 재테크 성공 스토리 보다도 큰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저는 상사의 갑질로 인해 괴로워 해 본 기억은 크게 없습니다. 아마 마음이 다칠 만큼의 갑질을 당해본 적이 없거나, 혹은 그러한 기억들을 마음에 담아두지 않을 만큼 마음이 무뎌서 그럴 듯 합니다. 그런 일을 겪지 않았던 것은 전적으로 축복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한편으론 제가 가진 것도 없으면서 왠지 모를 깡다구가 좀 있는 편이었는지라 상사들도 이 깡따구를 건드리면 큰일나겠구나 하고 알아보고 지레 피했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네요. 그 깡다구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항상 마음 한 켠에는 "두고 봐라, 내가 여기 말고 할 일 없을 줄 아냐"하는 근거없는 호언도 남몰래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호연지기와 초연한 마음을 키우기 좋은 통영 바닷가의 카페

어쨋거나 그 깡다구와 근자감 덕분에 쭈그리고 살지는 않았지만 동시에 그로 인해 돈에도 크게 무감한 채로 살았습니다. 친구들이 "돈이 많았으면 좋겠다, 누구누구는 뭐해서 부자되었더라" 라는 이야기를 하면 저는 늘 팔짱을 끼고 등을 뒤로 젖히며 한마디 하곤 했지요. "난 돈 많은 건 하나도 부럽지 않아. 똑똑한 게 부럽지"라고. 물론 그 선호는 지금도 변함없습니다. 유튜브에 돌아다니는 수십억 재산가들의 성공담보다, 지적자산을 가지고 있는 분들의 흥미로운 컨텐츠가 저는 훨씬 탐이나고 부럽습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무형의 자산을 나는 가지고야 말거야, 라고 스스로 세뇌하며 돈에 초월한 삶을 살아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들어 부쩍 재테크서적을 탐독하는 이유는, 사십 대에 접어들고 보니 저의 그 깡다구나 지적자산에 대한 갈망만으로는 예전의 텐션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음을 점점 체감하기 때문입니다. 체력이 딸리다보니 깡다구로 직장에서 버티는 것도, 지적자산을 축적하기 위해 새롭게 공부를 하는 것도 점점 어려워집니다. 이제 그만 직장노예생활을 청산하고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고 싶은데, 그러자니 회사를 관두면 어디서 이 돈을 벌 수 있겠냐는 심정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마흔의 제 자신을 보며 퍼뜩 깨닫습니다. 존 리 선생님의 말처럼, 돈에 초월한 삶을 살다보니 결국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돈이 없어서 하지 못하고, 부당한 일을 당해도 돈이 없어서 참아야 하며, 은퇴하고 싶어도 돈이 없어서 계속 일을 해야 하는 가난한" 상황에 빠져버렸다는 것을요.

이화동의 달팽이길

금융문맹이었던 저는 참으로 일관성없이 돈을 굴려왔습니다. 취업하자마자 월급의 절반을 쪼개어 청약저축과 새마을금고에 적금을 부었고, 남은 돈은 그냥 다 써버렸습니다. 이 책에서 강조하는 부를 창조하는 라이프스타일, 즉, 필요없는 지출을 줄여서 노후를 위한 투자를 일찍 시작하는 스타일은 전혀 아니었지요. 왜 그리 사고 싶은 옷이며 가방은 많던지, 가야 할 해외여행은 얼마나 많으며 만나서 맛있는 것을 사줘야 할 친구들과 후배들은 어찌나 많던지요. 그렇게 씀씀이가 크다보니 돈이 모이는 속도가 또래 친구들에 비해 상당히 더디었습니다. 이천년대 초반 차이나펀드 열풍이 부는 것을 보고 곧장 모아진 적금을 차이나 적립식 펀드로 옮겨 소소한 수익을 거두긴 했지만, 곧이어 평생 고생만 하신 부모님 동반 해외관광 이벤트를 대대적으로 벌이면서 그 모은 돈을 다 써버렸습니다. 화학회사나 중소기업 테마주를 사들여서 3~4년을 오를 듯 말듯 일자곡선을 긋는 채로 가지고 있다가 전세금으로 쓰기 위해 원금 이하로 팔아버리기도 했지요. 10여년 전 당시 신상 금융상품이었던 "변액유니버셜보험"에 가입하면 소개팅을 해 주겠다는 설계사의 설득에 넘어가서 월 3-40만원씩을 꼬박 7-8년 붓기도 하였습니다. 변액유니버셜 보험의 의무납입기간이 끝날 무렵인 2014년, 내 몸뚱이 하나 뉘일 집은 있어야겠다 싶어서 보험을 해약하고, 퇴직금 중산정산금과 국민주택기금 대출을 보태어 수도권에 초소형 아파트를 분양받은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 덕에 거대한 부동산 상승의 시대에 운 좋게 올라탈 수 있었고, 중산층 약간 아래 그 언저리 수준에서 다만 벼락거지를 면했을 뿐입니다.

내 집은 아니지만 호숫가의 멋진 아파트들

운이 좋게 부동산 대세 상승장에 곁다리로 올라탈 수 있었지만 이제 그 행운마저 끝나간다고 보고 있습니다. 행운시대의 종말 이후, 어쩌다 얻어걸린 부동산 버블을 걷어내고 인플레이션과 대면하여 싸우는 투자의 진검승부를 벌여야 할 기로에 서게 되었습니다. 이제서야 이 책에서 말하는 "내가 돈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닌 돈이 나를 위해 일하게 하는 방법"에 대해 다급하게 고민하기 시작한 것이지요. 유대인들은 12~13세에 성년식을 할 때 성경과 시계, 현금을 선물받는다고 하네요. 시계는 시간의 중요함을, 현금은 투자의 중요함을 알려주기 위한 선물이라고 하네요. 하루라도 빨리 투자를 시작하고 단타가 아닌 장기로 투자하여 시간을 내 편으로 가져오는 것이 핵심입니다. 시간에 돈이 붙는 복리의 마법을 생각하면 마흔의 깨달음이 늦기도 하였지만, 반대로 퇴직까지 여전히 20~25년의 시간이 남아있으니 지금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a step in the right direction!

돈이 일하게 하려면 무엇보다도 주식에 투자해야 하고, 10년 이상 장기로 투자하면 부동산 못지 않은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다고 합니다. 실제로 저자의 데이터에 따르면 1999년 1월부터 2019년 11월까지 서울의 아파트가 252% 상승하는 동안, 코스피 지수는 568.5%가 상승했다고 하네요. 주식이 부동산보다 훨씬 열심히 일하고, 계속해서 성장하는 확장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일본인들은 자산의 80%를 은행이나 부동산에 묶여두어서 돈이 일하는 환경을 만드는데 실패한 반면, 미국은 401K라는 연금저축제도를 통해 직장인들이 수입의 일정부분을 주식시장에 장기 투자하도록 유도하여 돈이 일하게 한 결과 2018년 기준 백만장자가 된 사람이 1년만에 41%나 증가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은 금융지식의 차이가 일본의 장기불황과 미국의 지속성장을 가르는 결과로도 이어졌다고 하네요. 미국이나 호주의 경우에는 은퇴자산에서 주식이 차지하는 비중이 50%인 반면 우리나라는 2% 정도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노동소득과 자본소득을 동시에 일으키기 위해서는 원금보장의 잘못된 믿음에서 빠져나와 창업과 동일한 효과를 누릴 수 있는 주식투자를 시작해야 한다고 저자는 단언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제가 지난 10년간 가입했던 원금보장형 연금저축보험의 성과는 총 납입금액 대비 21%의 수익률을 보이고 있는 반면, 이제 시작한지 2년 정도 되어가는 연금펀드의 ETF 수익률은 벌써 23%를 보이고 있습니다. 물론 최근 1~2년의 데이터로 어느 것이 낫다라고 이야기 할 수는 없겠지만, 분명한 것은 수동적인 투자가 아닌 능동적으로 돈이 일하는 구조를 셋팅하면 얼마든지 돈이 나를 위해 좀 더 열심히 일하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외에 저자의 몇가지 조언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과소비를 투자로 바꾸는 라이프스타일로 전환하기만 해도 복리의 마법이 나타난다
  • 좋은 기업의 주식을 흔들림없이 보유하는 것, 그것이 훌륭한 투자가가 되는 가장 확실하고 유일한 방법이다
  • 주식을 자주 사고 파는 것은 현명한 투자방법이 아니다
  • 빚을 내서 투자하면 장기투자가 어려워진다
  • 단기적인 위험과 변동성은 장기적인 과실을 얻기 위해 감수해야 한다
  • 연금저축펀드는 반드시 가입하라

노후생활을 위하여 얼마를 목표로 투자설계를 해야 할까요? 윌리엄 벤젠이라는 재무관리사가 연구한 4%의 룰이 있다고 합니다. 만약 은퇴 시 10억이 있다면 원금의 4%인 4,000만원 정도(월 333만원 수준)를 원금을 지키면서 쓸 수 있다고 하네요. 5억원이 있다면 원금의 4%인 2,000만원(월 약 166만원)을 쓸 수 있는 것이구요. 대략 얼마 정도를 목표로 삼아 투자해야 할지 가늠할 수 있습니다.

저는 결국 이 모든 과정을 "금융농사"라고 이름붙이고 싶습니다. 즉, 돈의 씨앗을 심고 나서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도록 끊임없이 "수익률"이라는 거름을 뿌려주는 것이지요. 한 해에는 거름이 왕창 뿌려졌다가 다음 해에는 하나도 뿌려지지 않는다면 농사가 제대로 될 수가 없겠지요. 매년 고르게, 그러면서도 비옥하게 수익률이라는 거름을 뿌려야 합니다. 게다가 농사라는 것이 한 두 해 짓고 끝나버리게 되면 그것으로 끝이지만, 수십년 꾸준히 가꾸면 곡창지대가 될 것입니다. 심은 종자의 작황이 좋지 않을 것 같으면 때로는 밭의 일부분을 갈아 엎고 땅을 고르게 갈아주는 일도 잊지 않아야 할테지요. 저는 그것을 앞서 홍춘욱 선생님의 "환율의 미래"에서 읽은 "자산배분 조정"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수익률을 예측하는 일과 꾸준한 수익률을 유지하는 일, 어떤 종목의 작황이 좋을지 선택하는 일 어느 것 하나 사실 쉬운 일이 아니지요. 그렇기에 농부의 공부는 계속되어야 합니다. 금융농사로 엄청난 부를 일구겠다는 욕심은 없습니다만, 그래도 자고 있는 동안이나 깨어 있는 동안이나 나의 전답을 조금씩 가꿀 수 있다면, 앞서 홍춘욱 선생님이 강변하셨듯 누군가한테 쭈글거리며 사는 삶이 아닌 좀 더 자유로운 삶을 마침내 살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소망하여 봅니다. 덧붙이자면, 사람한테 채찍질 하시는 갑질 상사님들이 앞으로는 사람 아닌 돈에다가 채찍질을 하셔서 돈이 더 열심히 일하게 하면 좋지 않을까 바래봅니다.

이 책은 금융농부가 되는데 필요한 금융농심(農心)을 갖추는데 좋은 책인 듯 합니다. 구체적인 자산배분의 테크닉이나 종목 추천은 나와있지 않습니다. 가끔 특정 자산운용사의 홍보가 등장하여 약간 당황스럽긴 하지만, 어렵지 않으면서도 설득력 있는 내용 덕분에 하루 이틀 정도의 속독으로 돈에 관한 철학을 체득할 수 있는 책입니다. 하트바구니 2개를 부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