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은기록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게(레몬심리, 2019년)

썸머에디션 2021. 11. 3. 23:25


제가 초등학교 중학교에 다닐 무렵의 제 아버지는 언제 버럭 화를 내고 혼을 낼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분이었습니다. 주말 오후의 아빠는 참으로 웃기고 재미있었습니다. 산으로, 놀이터로, 공원으로 우리를 데리고 다니며 짖궂은 장난과 재미있는 농담, 기발한 놀이를 아끼지 않으셨어요. 그러다가도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대부분의 날들의 아빠는 도대체 무슨 이유인지 모르게 늘 신경질을 부리셨습니다. 어느 날은 TV소리가 너무 커서, 어느 날은 읽은 책들을 제자리에 갖다놓지 않고 바닥에 늘어놓아서, 어느 날은 방바닥에 색종이를 너무 많이 어질러 놓아서, 등등 아빠가 화를 내는 이유는 다양하고도 예측 불가했습니다. 그래서 아빠의 퇴근하는 발소리가 아파트 복도에 들리면 그 즉시 방으로 들어와서 문을 닫고 마음을 콩닥거리며 책상머리에 붙어앉아 있었던, 요즘 세상이었으면 오은영 박사님께 아주 혼쭐이 났을 법한 기억이 있습니다.

아버지와의 마카오, 2015년

그랬던 아버지는 놀랍게도 정년퇴직을 하고 난 이후의 노년에는 그 종잡을 수 없던 신경질이 어디론가 다 사라지고, 더할 나위 없이 너그럽고 더할 나위 없이 느긋하며, 노자님 장자님 맹자님이 가르치신 모든 인의예지를 실천하시는 분이 되셨지요. 우스운 일이지만 우리 조카들은 할아버지가 원래부터 그런 분인 줄로만 알고 있으니까요. 이 책을 읽으면서 저는 그러했던 아버지의 모습이 계속해서 떠올랐습니다. 이 책에서 말하듯 사람은 힘든 시절에 그 본색과 그릇이 드러나기 마련이지요. 지금의 아버지는 평안한 노년 속에 특별하게 책임지셔야 할 일도, 딱히 부담스러우신 일도 없기에 당신의 그릇에 자식들과 손주들을 모두 담아 안고 가는 넉넉함이 있습니다만은, 당신이 한창 바쁘게 가장노릇을 하시던 사오십대 그 시절은 지치고 버겁고 사는게 어려우셨을테고, 그래서 그 짜증스럽고 피곤한 기분이 아버지의 그릇 밖으로 넘쳐흘러서 그대로 태도가 되셨던 건 아닐까 합니다. 딱 내 아버지의 불안정함이 절정이었던 그 나이대에 저 역시도 점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딸인 나에게도 그런 모습이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를 점검하게 됩니다.

한 사람이 밖으로 표현하는 기분의 에너지는 생각보다 강력해서 사무실 전체 분위기를 좌우하기도 한다

가장이었던 아버지의 태도 하나로 온 가족이 쩔쩔 매었듯, 직장에서 점차 직급이 높아지고 영향력이 커질 수록 나의 기분이 태도로 그대로 이어진다면 동료들을 힘들게 만들 수 있습니다. 최근 몇 달간 장거리 출퇴근길에 대한 부담감과 업무에 대한 고민이 겹치면서 다소간의 정신적, 체력적 한계를 경험하고 있었습니다. 굳이 표현을 하지 않아도 나의 지쳐버린 상태가 밖으로 표출되었는지 "어디 아파?"라는 질문을 종종 듣게 되었습니다. 짜증어린 피곤이 어떤 형태로든 태도로 드러나고 있었던 듯 합니다. 이 책에서 말하는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는 체력에 한계에 부딪히지 않았는지도 함께 살피고, 모든 생각들이 비관적으로 흐른다면 유산소 운동을 하라"는 조언이 얼마나 합당한 조언인지 경험적으로 알고 있기에, 최근의 지쳐버린 상태의 전환을 위하여 매일매일 25분의 스트레칭과 20분의 댄스운동을 시작하였습니다. 그것만으로도 그 시간 자체가 오롯이 나 자신의 몸과 마음을 존중해주는 느낌이 들어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것을 느낍니다.

웹툰 미생 중

나는 이 일을 완벽하게 해 내야 해

"업무를 끌로 판다"는 평을 종종 듣는 저는 사실 그리 완벽한 사람이 되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이든지 계획대로 해 놓으려고 무진 애를 쓰는 편입니다. 아마도 업무를 그르쳐서 크게 고생했던 과거의 기억이 트라우마이자 컴플렉스처럼 남아서, 그 이후로는 무엇이든 완벽하게 하기 위해 스스로를 다그치는 성격으로 저도 모르게 변한 것 같습니다. 이러한 성향 때문인지 나의 단점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고 혹여나 어떤 작은 지적을 받거나 일이 풀리지 않으면 몇 일씩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결국 불면의 밤이 이어지다보면 피로가 급격히 쌓여서 결국에는 기분이 안좋아지고 안 좋은 기분이 예민한 태도로 이어지는 악순환에 빠질 때가 많습니다. 실수를 잔뜩 저질러 놓고도 하하하 웃어제끼던 이십대 그 시절의 자신감과 호탕함이 어쩌면 다시 필요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들을 원망하는 마음의 근원을 따라가보면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라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다"

한 번은 같이 일하는 서브파트너와 업무처리 방식을 놓고 맹렬하게 다투었던 적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내 방식이 옳은 것 같은데, 나보다 경력이 짧은 서브파트너가 그대로 따라주질 않으니 그가 어이없는 고집을 부린다는 생각에 거의 싸움 수준의 언쟁이 발생했던 것입니다. 직급이 높아지고 경력이 쌓일 수록 가장 경계해야 하는 부분이 바로 이 점이 아닌가 합니다. 의견의 불일치가 조금이라도 발생하는 지점에서는 의식적으로 "내가 틀리고 상대방이 맞는 것은 아닐까?" 하고 3초정도 스스로에게 물으며 모든 의식의 흐름을 일시정지 시키는 연습을 꾸준히 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모두 같은 듯 다르지

시간을 되돌려서 45살의 제 아버지를 만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책에서 읽은 구절을 말씀드리고 싶네요."기분과 태도는 별개다. 내 안에서 저절로 생기는 기분이 스스로 어찌할 수 없는 것이라면, 태도는 다르다. 좋은 태도를 보여주고 싶다면, 소중한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다는 마음만 있다면, 우리는 충분히 태도를 선택할 수 있다."라고. 우리 둘 다 완벽하게 애쓰지 말자고, 돈이 없으면 어떻고 좀 부끄러워지면 어떠냐고, 다 기도로 맡기고 이제 좀 쉬시고 운동도 하시자고 말입니다. 어쩌면 지금의 저 자신에게 제가 해 주어야 할 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가볍게 술술, 오고가는 출퇴근길 하루만에 다 읽은 책입니다. SNS에 올려놓은 글 모음처럼 가볍고 쉽습니다. 작가가 중국인인데 한국인인 저한테도 딱 들어맞는 말들이 많습니다. 굳이 찾아 읽을 필요는 없겠지만, 우연히 손에 쥐게 되면 가볍게 읽어보아도 나쁘지 않을 듯 합니다. 하트바구니 1개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