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간 부동산, 주식, 코인 등 각종 자산의 가치가 급상승하였습니다. 상승장을 잘 잡은 사람들은 몇 년 사이 부자가 되었고 유튜브에는 수십억 자산가들의 꿀팁들이 넘쳐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고, 그러다보니 우리가 원래부터 그랬던 것 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원래부터 십억 자산가였고, 외제차를 끌고 다녔으며, 주식부자였던 것 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불과 3~4년 전만 해도 그렇지 않았습니다. 2015~16년의 기사를 찾아보면 실업률 역대최고치, 가동률 감소, 해운산업 구조조정, 이런 것이 우리 경제의 키워드였습니다. 그리고 이 단어들은 대개는 불황, 즉 "디플레이션"과 관련이 많은 단어들입니다.
지금껏 살면서 "인플레이션"이라는 단어가 이토록 많이 회자되는 경우를 본 적이 흔치 않습니다. 저에게 있어 경제적으로 큰 사건은 1998년 IMF 외환위기, 2008년 서브프라임 금융위기, 그리고 2012년 유럽재정위기처럼 무언가 폭망의 검은 그림자가 드리운 사건들이고, 그래서 인플레이션이라는 단어를 실생활에서 경험한 바는 흔치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저자 역시, 기본적으로 현대 경제사회에 깔려있는 우세한 국면은 바로 "디플레이션"이라고 설명하며, 그 원인을 다음 세 가지에서 찾고 있습니다.
첫째, 생산성의 향상입니다. 특히 최근의 생산성 향상은 "자본장비에 대한 투자 없는 생산성 향상"이라고 합니다. 정보통신혁명으로 한계생산체감의 법칙이 한계생산체증의 법칙으로 바뀌었습니다. 즉, 정보통신산업은 학습곡선이 가팔라서 생산량이 늘어날 수록 생산단가가 지속적으로 떨어집니다. 반도체 산업이 대표적인 케이스이지요. 게다가 아마존 같은 전자상거래의 발달도 제품가격이 올라가는 것을 막아서 전반적으로 물가를 누르는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쿠팡도 마찬가지이구요. 물류공룡들의 유통전쟁으로 물건값이 올라갈 여지가 없고, 이 전쟁이 소비자 물가를 낮추는 일등 공신이라는 것입니다.
둘째 노동임금의 정체입니다. 사실 생산성이 올라가면 그로 인해서 종사자들의 임금도 늘어나야 하는데, 막상 세계 최대시장인 미국의 노동시장만 보아도 그렇지 않다고 하네요. 예전과 달리 최근의 기업 생산성 향상에 따른 이득은 최고 경영자나 탑 티어급 엔지니어 연봉의 폭발적인 증가로만 이어질 뿐, 대다수 근로자의 임금은 정체상태에 머물러 있다고 합니다. 미국에서 STEM(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Mathematics) 전공자들은 인문학 전공자들보다 정확히 1.8배의 연봉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게다가 대졸자들의 55%가 여성인데, 대졸여성들은 아이러니하게도 "결혼시장"에서 우위를 점하면서 대부분 취업보다는 결혼을 선택하는 비율이 높기 때문에 경제활동 참가율이 낮다고 하네요. 결국 고소득을 누릴 수 있는 기술편향적 대졸 노동자의 비중이 높지 않아서 기업의 생산성 향상의 결과가 노동임금 향상으로 이어지지 않고 주주 및 일부 최고 기술자들만 그것을 누리고 있다보니, 소비의 증가로도 자연히 이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셋째 경제개방과 자유무역체제 때문이라고도 합니다. 세계적인 경쟁이 가속화되는 상황에서는 제품가격이 인상되기 어렵다고 합니다. FTA를 체결하면서 연이어 시장을 개방하게 되는 나라일수록 글로벌 경쟁의 압박으로 기업에서 제품 가격을 인상하기가 쉽지 않다고 합니다. 한국과 미국의 물가상승률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 역시 이 이유를 들어 설명가능합니다. 게다가"근로자들의 입장에서는 사업자가 저임금 근로자들이 있는 중국으로 공장을 옮기겠다"라고 위협하는 것만으로도 임금 상승의 압력을 낮출 수 있다고 합니다.
결국 이와 같은 이유로 실질GDP가 잠재GDP보다 낮은 GDP갭 마이너스 시대가 계속해서 이어지면서 디플레이션의 위험이 늘 도사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디플레이션에 빠지게 되면 통화정책이 무력화되어서 중앙은행이 금리를 아무리 인하하더라도 결국 제로금리 밑으로는 낮출 수가 없어서 정책대응력이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고 합니다. 또한 국민 대다수가 앞으로도 물가가 하락할 것이라고 예측하여 소비를 미루기 때문에 기업의 실적과 고용 및 투자가 계속해서 나빠지는 악순환에 빠지게 됩니다. 미국에서 1%의 디플레가 발생하면 실업률은 5.8%에서 10%까지 상승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고 하네요. 게다가 빚을 지고 있는 사람들의 부채부담이 더욱 증가하게 됩니다. 이웃나라 일본의 경우 부동산 버블이 빠지고 디플레이션에 찾아오면서 주택가격이 약 60% 이상 빠졌는데, 주택가격이 폭락한 후에도 꼬박꼬박 원리금을 상환해야 하니 이 직전에 주택을 구입한 사람들의 부채부담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커졌다고 합니다.
따라서 저자는 기본적으로 깔려있는 디플레이션 위험을 막기 위해 정부에서 지속적으로 확장적 재정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통화확대 정책을 지속하다가 하이퍼인플레이션이 찾아오더라도 , 그것은 금리인상 같은 통화정책으로 어떻게 급한 불을 끌 수 있는 급성통증증인 반면, 디플레이션은 일단 진입하면 다시 되돌릴 방법이 마땅찮은 만성통증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재미있게도 정책 방향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이 각 나라의 과거사에 대한 트라우마라고 하네요. 우리나라가 외환위기에 대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고, 독일이 2차 세계대전 전후 살인적 인플레이션에 대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듯이 말입니다. 우리에게는 또한 이웃나라 일본의 전철에서 보았던 트라우마가 있지요. 일본은 과거 1980년대에 금리를 올렸어야 할 그 타이밍에 미국 등과의 플라자합의로 엔화를 절상하면서 금리를 낮출 수 밖에 없었고, 그에 따라 전세계적으로 독보적인 부동산 버블이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버블을 끄기 위해서 급격히 금리를 올렸으나 동시에 주택공급 과잉까지 겹치면서 부동산 버블이 붕괴되고, 이후 길고 긴 불황의 늪에 빠지면서 1993년에서 2013년까지 일본의 주택가격지수가 50% 폭락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의 주택가격 상승의 불을 끄기 위하여 정부에서는 뒤늦게 공급확대 정책을 펼치기 시작했고, 주택공급 인허가나 착공 물량이 전년 대비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실정입니다. 3기 신도시에서의 대규모 주택공급도 3~4년 후 부터 가시화 되면서 일시적으로 주택공급이 급증하게 될 것입니다. 물론 서울 도심 물량이 어떻게 풀리느냐에 따라 수급의 균형이냐, 과잉이냐 여부가 결정되겠지만요. 주택 시장의 연착륙 여부를 면밀히 지켜보아야 할 때임은 분명합니다.
경기변동의 향방을 결정하기 어려운 이 때에, 자산관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자는 3가지 타입의 자산배분을 제안합니다. 즉, 노르웨이 석유기금같은 자산 배분, 한국의 국민연금 자산배분, 일본의 국민연금 자산배분 전략을 추천하고 있는데요, 얼마전에 읽은 마법의 연금굴리기에서 추천한 자산배분 포트폴리오와 비교해보니 흥미로운 부분이 있습니다. 아래 표로 정리했으니 참고하세요.
홍춘욱 스타일 (디플레전쟁) |
노르웨이석유기금(2010~19년 연평균 6.4% 수익) | 한국의 국민연금(연평균 7.2% 수익) | 일본의 국민연금(연평균 5.8% 수익) |
주식 62%(선진국 31:신흥국 31) 채권 36%(선진국 18:신흥국 18) 대체자산 2%(원자재 2) |
주식 32.9%(한국 19.1, 해외 13.8) 채권 56.4%(한국 52, 해외 4.2) 대체 10.5%(원자재) 단기자산 0.5% |
채권 64.1%(국내 53.4, 해외 10.7) 주식 30.9%(국내 15.9, 해외 15) 단기자산 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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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일 스타일 (마법의 연금굴리기) |
공격형(2002~2019년 연평균 8.8%) | 중립형(연평균 8.2%) | 안정형(연평균 7.5%) |
주식 70%(선진국 3: 신흥국 3: 대체투자 1) 채권 24%(한국 12: 해외 12:)단기자산 6% |
주식 50%(선진국 2:신흥국 2: 대체투자 1) 채권 40%(한국 20: 해외 20) 단기자산 10% |
채권 60%(한국 30:해외 30) 주식 30%(선진국 12:신흥국 12: 대체 6) 단기자산 10% |
수익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자산배분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바로 리밸런싱이라고 합니다. 리밸런싱이란 자산별 배분 비율을 일정하게 관리하기 위해서 자산별 편입비중을 재조정하는 것을 말하는데요, 이에 관해서는 제 앞선 읽은기록 "마법의 연금굴리기"에도 언급되어 있습니다. (출처: https://bookfriday.tistory.com/20 [500권의 썸머])
우리가 직면하게 될 앞으로의 경제흐름은 인플레이션일까요, 아니면 디플레이션일까요. 어쨋든 많은 지표들이 현대 경제사회의 기저는 디플레이션임을 보여주고 있으니, 일시적인 인플레이션이 끝나고 나면 불황을 경계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다행스럽게도 우리 정부는 디플레이션에 대한 트라우마가 인플레이션에 대한 그것보다 크니 금리인상폭을 적절히 통제하며 불황이라는 싱크홀을 용케 피하리라는 기대도 해 봅니다. 하지만 거시경제의 향방을 한낱 개인은 아무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습니다. 믿을 것은 자신의 신념과 안목 뿐이지요. 그야말로 "모두가 흥분할 때 냉정하게 공포에 다가가야" 한다는 회장님 말씀이 명언이네요.
역시나 어렵습니다, 홍춘욱 선생님의 책은. 독자를 저자 당신마냥 높은 금융지식 보유자로 간주하시는 듯한 서술 방식에 몇 번을 왔다리 갔다리 읽어야 하는데요, 그렇지만 저의 방구석 경제선생님의 화두를 받아 고민하다보면 어느새 세상을 보는 눈이 넓어집니다. 하트바구니 세 개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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