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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는 칭찬하지 않는다(기시미 이치로, 2021년 1월, ♥♥)

썸머에디션 2021. 10. 13. 10:18


어릴 때 옆 집 방충망에 구멍을 뚫어놓은 적이 있습니다. 그 집 아들이 창문에서 내다보며 계속 약을 올리자, 내가 여자라고 얕본다는 생각이 들어 분이 오른 나머지 본 때를 보여주겠다며 할아버지 지팡이를 들고 와서 그 방충망에 구멍을 뚫은 것이었습니다. 그 집 아주머니가 우리 집에 와서 방충망 값을 물어내라고 했고, 그 이후의 기억은, 퇴근하신 아버지에게 호되게 혼이 났던 것으로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지금에서야 처음으로 깨달은 사실인데, 그 일련의 기억 속에서 어머니가 나를 나무랐던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분명히 따지러 온 옆 집 아주머니를 상대해야 했던 사람은 아버지가 아닌 어머니였을텐데, 어머니는 그 때의 당혹함을 나에게 전가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엄마와 아빠의 결정적 차이였습니다.


4-5년 전의 일입니다. 맡고 있는 업무가 너무나도 어렵고 힘에 부쳤던 시절이었습니다. 일주일에 서너번은 기본으로 밤샘근무를 하며 자료들과 씨름을 했고,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눈 앞이 막막한 나머지 아침마다 운전하는 차 속에서 찬송가를 크게 부르며 출근을 할 정도였습니다. 거의 극지의 망망대해 속에서 떠 다니는 부빙들에 갇혀있는 듯한 상태였는데, 동료 직원들과 전문가들의 도움으로 그 위기를 어떻게 어떻게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어려운 일을 해 내었다는 영광과 보람도 있었지만 동시에 내 리더십의 뼈아픈 실패도 그 때에 남아있습니다. 함께 일하는 써브파트너가 업무의 템포를 따라오지 못해서 때로는 내가 해야 할 일이 가중될 때가 많았고, 힘에 부친 나는 그가 원망스러운 나머지 무섭도록 몰아붙일 때가 있었습니다. 주위에서는 그 직원이 사기가 떨어진 것 같으니 잘 도닥이라고 했으나 내 기준에서는 그 직원의 열정이 너무나도 부족해 보였던 탓에, 매섭게 혼을 내곤 했습니다. 책에서 저자는 열정이 없는 직원이 있다 할지라도 그 직원만의 대체불가한 고유 존재가치를 인정하고 기다려주라고 합니다. 그러나 나 역시 내 위의 상사에게 시급을 쫓기며 시달리는 상황에서 더 이상 아래 직원의 서투름을 커버할 여력이 없는데 무엇을 어떻게 기다려야 하는 것인지 솔직히는 이 책을 읽은 지금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몰아붙였던 것은 매우 후회스럽습니다. 답답하고 화가 나도 딱 5초만 참았더라면, 아니면 솔직하게, 나도 이 업무의 이 부분은 도저히 자신이 없고 어렵다, 그러니 나를 도와달라고 솔직하게 부탁을 했더라면 그 후배의 미래도 달라지지 않았을까 합니다. 내 직장 생활 중 이 부분이 가장 큰 오점 중 하나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https://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7454160&memberNo=33776461#

그 이후에도 나는 함께 일하는 파트너들이 내 기대치와 다른 결과를 낼 때 종종 짜증을 부리고 혼을 내기도 했는데, 그러고 나면 마치 잃어버린 포인트를 찾아오려는 시도 마냥 의도적으로 칭찬을 하기도 했습니다. 칭찬 역시 너와 나는 대등관계가 아닌 상하관계라는 뜻을 암묵적으로 담고 있기 때문에 때로는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오히려 사기를 빼앗아 버리기 때문에 리더는 칭찬을 해서는 안된다고 합니다. 정말 사기를 올려주고 싶으면 "고맙다" 한 마디면 족하고, 지시를 할 때도 "해 줄 수 있을까요?" 라는 표현을 사용해야 한다고 합니다. 나는 사기를 진작하답시고 후배들에게 "대단한데?"라는 표현을 의도적으로 사용했었는데, 이마저도 나쁜 상사의 모습이 아니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능력없는 리더로 보일까봐 걱정하는 것 자체도 리더로서 적합한 마음이 아니라고 합니다. 리더는 나 자신에 대한 관심, 즉 뛰어난 리더로 보이고 싶은 마음이나 실패할까봐 걱정하는 마음, 그리고 상의하지 않고 혼자 하는 결정 등 오로지 나 자신에게 시선을 두는 일을 멈추고 공동체 감각을 길러야 한다고 저자는 이야기 합니다. 공동체의 목표와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의 행복한 삶에 대한 인식, 그것이 리더로서 가져야 하는 감각입니다. 모르면 모른다고 솔직하게 밝히고 상의해야 하며, 그저 있으나마나 한 통나무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하되, 궂은 일은 도맡고 어떤 일의 결과가 되었든 책임을 지는 사람, 그것이 리더라고 합니다. 심지어 어떤 직원이 실수를 한다면 그 직원의 역량을 키우지 못한 것, 혹은 그 실수가 공적인 결과로 노출되도록 상황을 내버려 둔 것 역시 리더의 책임입니다. 스스로 리더로써의 카리스마가 없는 것 같다고 고민하는 사람, 그런 사람들이야 말로 좋은 리더가 될 자질이 있는 사람이라고 저자는 이야기 합니다. 리더들의 카리스마를 이야기하는 다른 미국식 리더십책들과는 조금 다른 색다르지만, 우리 주위의 카리스마틱한 리더들이 때로는 직원들을 상당히 힘들게 해서 역효과를 내는 상황들을 보면 어쩌면 합리적인 주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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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 보니 리더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듯 합니다. 카리스마는 부리지 않되 실제로는 모든 것을 다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라니, 이것은 그야말로 하늘의 능력이 부어져야만 가능한 영역인 듯 합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우리 엄마가 진짜 리더였습니다. 사고뭉치 악당이었던 저에게 그 어떤 당혹감도 전가하지 않고 조용히 책임졌던 엄마 말입니다. 그 덕에 제가 그나마 이렇게 온전한 인격으로 성장할 수 있었으니까요. 제가 파트너들에게 엄마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그래도 그 그릇을 조금이나마 배운다면...역시 답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이 책의 이야기들은 흔히 접하는 잭웰치 스타일의 미국식 리더십과는 맥락이 달라서 새롭기도 하였지만, 어떻게 보면 놀라울 정도로 닮은 일본과 우리의 조직문화를 감안할 때 더 와닿는 조언이기도 하였습니다. 특히 지난 날들에 저지렀던 저의 실수를 뼈아프게 돌아보게 만드는 책이었다는 점에서 하트를 담아 드리면서도, 어떤 조언들은 저같은 평범한 중간관리자보다는 사람관리의 선택에 좀 더 자율성이 있는 리더 중의 리더(CEO)에게 적합한 내용이 아닌가 하는 점에서는 하트 바구니는 일단 두 개로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