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금요일 휴가였다.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 없었다. 아무래도 휴식이 필요했었나보다. 갑자기 비상상황이 생겨서 휴가 취소의 위기가 찾아왔으나, 일을 해결해달라고 짧게 기도했고 다행히 잘 일단락되어 나의 휴가까지 보전받게 되었다.
항상 꿈꿨던 평일의 아침런에 휴가 덕분에 도전. 평일 아침 시간 거리에는 어떤 사람들이 있을까 궁금했는데 의외로 평일 아침의 시간은 동물들의 시간이었다.
집에서부터 귀여운 고양이들의 뜨거운 시선을 받으며 나서서, 내 가슴까지는 족히 올 커다란 새들을 두 번이나 만났으며, 동물병원에는 귀여운 멍멍이가 옷을 홀딱 벗고 망연자실 앉아있었다.
휴가를 낸 사유는 우리 고양이 건강검진도 있었다. 이렇게 의젓하게 진료받는 고양이는 처음 본다며 선생님들의 칭찬을 가득 받은 우리 고양이. 이게 다 뭐다냐 싶었을텐데도 꾹 참고 있는 그 표정만 봐도 웃음이 난다.
스케일링까지 다 끝나니 어느새 너댓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검사도 스케일링도 모두 의젓하게 받았지만 방광에는 슬러지, 잇몸에는 치은염이 있어 각종 처방조치를 받았다. 아무래도 올 한 해 몇일 씩 집에 내버려두고 다닌 탓이 큰 것 같다. 처방사료와 보조제들을 바라보며 어떻게 케어해야 할지 고민이 커졌다.
몇년만의 불금 강남역 외출. 한 때 지인들과 괜한 것도 없으면서 강남역 일대를 쏘다니던 시절이 생각났다. 그 때의 그 왁자했던 시간은 사라지고 대신 거대 고양이가 새롭게 자리잡고 있다.
약속도 없이 온전히 내게 주어진 주말의 시간. 파워내향인으로서 한 주 내내 공인으로 살아야하는 나에게는 숨통같은 시간이다. 대표님 말씀에 전적으로 찬성합니다
고양이, 십자가, 햇빛, 화분 -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한 곳에 모두 담긴 순간.
성경에는 다윗 시대에 "시세를 알고 이스라엘이 마땅히 행할 것을 아는 우두머리가 이백 명이니 그들은 그 모든 형제를 통솔하는 자이며"라는 대목이 나온다. 시세를 안다는 것은 영어로 understand the times 라고 표현되는데, 한 시대에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꿰뚫어보는 통찰력에 관한 것이다. 나는 지정학이 그 시세를 아는 중요한 분야 중 하나라고 본다. 나라들은 개인처럼 물리적 위치를 임의로 바꿀 수 없기에 어디에 위치하느냐에 운명적으로 묶일 수 밖에 없다. 인간의 역사, 성경의 역사가 모두 그 지리적 운명에 따라 펼쳐졌고, 대한민국 신도시 중 한 곳에서 소소한 반전세로 살아가는 나의 하루도 그 거대한 운명에서 자유롭지 않다.
이 책의 3분의 1정도 읽었는데 아직까지 비트코인에 관한 이야기는 등장하지 않았다. 현대 미국정치와 세계정치를 둘러싼 지정학에 대해서 계속 이야기한다. 그래서 더 신뢰가 간다. 개인적으로 아는 분의 지인의 지인이 오태민 작가여서, 이 작가님의 철학이 어떠한 것인지 두 시간동안 익히 들었더랬다. 그래서 눈여겨보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어보니 "시세를 아는" 통찰을 달란트로 부여받은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국가와 민족의 운명을 결정 짓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개개인의 삶은 너무도 연약하게 바스라진다. "소년이 온다"의 첫 도입부가 광주사태로 시작되는 것을 보고, 아 또 광주 이야기인가, 싶어서 확 끌리지는 않았는데 계속 읽으면서 평양냉면처럼 서서히 빠져들고 있다. 다같이 엄마사람, 아빠사람으로부터 이 세상에 태어나 똑같이 뛰어다니고 까르르 웃고 배우고 넘어지며 자란 사람들이, 이 쪽 편에 서서 다른 쪽 편의 생을 파괴하고 죽인다는 것 - 그런데 막상 그렇게 해야하는 이유도 명분도 모르는 채 그 일들을 저지르게 되는 집단적 운명처럼 무기력한 비극이 없다. 그래서 소년은 자꾸만 이렇게 밖에 달리 이야기 할 수 없었나보다. '사람이 죽으면 새처럼 몸에서 빠져나가 날아가는 것일까, 살았을 때는 몸 어디에 있었던 것일까', 라고.
방콕 여행 브이로그를 보고나니 쏨땀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결국 주문해서 먹었는데, 7년 전 방콕 현지의 맛 소환이였다. 쏨땀과 팟타이꿍, 쏨땀과 백종원식 계란볶음밥. 연속 2회 쏨땀 등판으로 나중에는 속이 매워 고생했지만 그래도 쏨땀이 쏨땀했던.
일요런으로 마무리하는 주말. 사실 주중런과 휴가런을 했기 때문에 그냥 계속 낮잠이나 자고 싶었지만 그래도 주 3회 뛰었다는 주말기록을 남기고 싶어서 달려나갔다. 그야말로 기록이 이끄는 삶.
귀여운 쓰레기를 보면 못 참고 푼돈을 쓰는 나. 고양아, 너의 라이벌이다.
함께 일하는 직원에게 여지와 관용을 좀 더 베풀어야 한다는 지적을 받았고, 나는 나름 "직원 실수가 너무 많아서 제가 그렇게 일일히 챙기지 않으면 다 그르친다"라고 항변했다. 그러나 그 지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음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경고일 수도. 어쩌면 나의 마이크로 매니징으로 인해 모두가 더욱 그르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일일히 지적하고 싶을 때, 혹은 왜 그렇게 밖에 못하냐고 나무라고 싶을 때 - 내가 해야 할 일은 숨막히게 간섭하는 것이 아닌, 오히려 그를 위해 내 숨을 다해 기도하는 일일 것이다.
하여 기도하는 가운데, 놀라운 죄악을 깨달았다. 정작 내가, 직원들이 나보다 낫게 되게 해달라는 기도에 주저하고 있는 것이었다. 어쩌면 마이크로 매니징의 발로는, (1) 내가 제일 잘났고 (2) 앞으로도 그래야 한다 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세례요한이 했던, '그는 흥하여야 하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는 선언이 얼마나 큰 말인지 새삼 느낀다. 나는 본래 리더십이라는게 없게 태어난 사람이다. 그러나 연차가 올라갈수록 본의 아니게 리더의 자리에 앉게 된다. 리더십 없는 내가 리더로써 해야 할일은, '그들이 흥하고 나는 쇠하도록' 직원들을 위해 다만 기도하고 또 기도하는 것이다. 혹시 아는가. 겁이 많고 위축되어서 뚝딱거리는 사람들이, 알고보니 위대한 용사 기드온일지도.
개와 늑대의 시간. 거실 밖 풍경이 점묘화로 바뀌어있다. 저 점들마저 곧 사라지겠지. 길었던 주말, 길어진 생각들로 풀 차지 된 파워 I는, 다시 체험 삶의 현장으로 하얗게 불태우러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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