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주는 완전히 과부하가 걸려서 아침마다 억지로 눈꺼풀을 밀어올리듯 일어나야 했는데, 결국 그러다가 몸이 고장 나 버렸다. 금요일 오후부터 머리가 두 조각으로 쪼개질 듯 아파와서 결국 배려를 받아 오후 동선에서 열외되었다. 지난 주 부터 내내 이어진 자취방 짐 나르기의 여파인지, 아니면 호흡곤란 수준으로 터져나갈 듯 한 지하철 출퇴근이 더해져서인지. 그 와중에도 도시의 가을은 절정이었다. 🍂
금요일 퇴근 후 기어들어온 집은 이삿짐으로 아수라장이었고 엉망인 집에 들어앉아 있으려니 집에 있어도 집에 있는 마음이 아니었다. 결국 '나를 살려도, 나를 살려도' 주문같은 혼잣말을 하며 온통 어지럽게 널려있던 짐을 치우고 바위처럼 무거운 두통 속에서 쓰러져 버렸다.
어떻게 일어났는지 겨우 일어나니 거실에는 가을 풍경이 가득했고 야옹이들은 햇빛 속에서 소리없이 놀고 있었다. 너무나도 사랑하는 이 단정하고 고요한 순간을 뒤로 하고 약속장소로 나갔다.
20년 인연의 우리를 사람들은 '패거리'라고 부른다. 엉뚱한 언행과 과격한 셀프 디스로 때로는 보편인들에게 이해받지 못하는 우리지만 ㅎ 오랜 인연을 이어올 수 있음은 엉뚱하나 근본이 곧고 식견은 모자라나 공감은 넓은 우리의 성정 때문이리라. 원래 오십억의 초밥집을 가려고 했는데, 사장님이 흑백요리사에 섭외되었다가 편집되어서 최종 방송이 안되었다는 매우 복잡한 소문만으로도 이미 웨이팅에 재료 소진이었다. 대신 찾아간 "GIVENJOEAT" 식당이름도 웃겼지만
무엇보다도 친구 딸내미의 킹 받는 음표 연주는 봐도 봐도 웃겼다. 이것으로 장기자랑을 나간다고 했는데, 정말이지 폭발적 반응이 있었으면 좋겠다.
주말의 사진첩이 어느덧 브라운 톤으로 바뀌었다. 공원도, 가로수도, 집 앞 풍경도 웜톤 브라운으로 가득하다. 이상고온 덕에 이렇게 가벼운 옷차림으로 단풍을 보는 이 상황을 좋아해야할지 걱정해야할지. 개인적으로 가을톤 브라운의 유니클로 제이앤더슨 커브팬츠와 유메르 집업재킷이 정말 마음에 든다. 유니클로 디자이너 콜라보 라인의 핏과 색감은 그 자제로 독보적인 브랜드라고 봐아할 듯.
핏에 관해서라면, 지위가 올라갈수록 자기 핏에 맞는 자리를 찾아가는 메타인지가 정말 중요한 것 같다. 어떤 분이 기획을 담당하는 A부서에 있을때에는 같이 일하는 직원들이 그렇게 그 분을 힘들어했는데, 사업을 담당하는 B부서로 옮긴 후에는 직원들이 그 분의 리더십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서 어려운 문제들을 척척 해결하는 경우를 보았다. 자기 핏에 맞는 자리와 역할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자기 핏이 아닌, 자기가 보기에 좋아보이는 자리를 욕심내고, 많은 갈등이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남극에 침몰한 인듀어런스 호의 생존기는 유명하다. 그 선장 섀클턴의 목표는 단 하나, 선원들을 생존시키는 것이었다. 날마다 바다를 건너는 것과 다름없는 생업에서, 함께 일하는 직원들을 목적지까지 무사히 데리고 도착하여 "모두 무사한가?"라고 묻는 것이 리더가 해야 할 몫의 전부일 것. 내 핏에 맞게 그 롤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자리로 보내시기를 기도한다.
누가 그러는데 여자들은 하루 중 대부분 빵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따져보니 나도 일주일에 9번은 빵 생각을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신세계 사우스시티에 가니 "밀도"라는 딱 봐도 심상찮은 식빵이 있어서 사왔다. 버터를 발라서 구운 후 탄자니아 AA를 내려서 함께 먹었는데 역시, 빵의 풍미와 식감이 예사롭지 않았다. 계속 사 먹게 될 예정.
사실 러닝의 이유도 빵을 걱정없이 먹기 위해서이므로. 컨디션이 바닥을 치는데다가 주말 중 하루는 부슬부슬 비가 오면서 러닝의 의욕이 도무지 생기질 않았다. 의욕이 없을 때에는 새로운 코스가 동기를 만든다. 오랫만에 호수 둘레를 뛰었다. 지난 진해마라톤 5km 이후 새로운 목표가 생겼는데 10Km에 도전하는 것. 현재의 러닝은 계속 5k 어바웃을 맴돌고 있는데 서서히 다져가야겠다.
가진 것의 많고 적음이 중요한 것 같진 않다. 내가 지향하는 추구미와, 겉으로 발현되는 라이프 스타일이 하나의 핏으로 일치될 때 찾아오는 내적 외적 충만감이 내겐 더 중요하다. 제대로 된 것을 추구하기 위해, 그리고 추구의 모양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기도와 묵상으로 그 일치의 순간을 계속해서 쌓아가는 과정이 내게는 또 다른 러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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