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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은 글 주인의 삶과 닮았다, "대통령의 글쓰기"(강원국, 2017년)

썸머에디션 2021. 12. 2. 00:09




1. 글쓰기 전에 세 번 생각하고, 쓸 것이 도저히 생각나지 않을 때에는 차라리 다른 일을 하며 생각이 숙성되기를 기다릴 것, 연애처럼 쌈박한 끝맺음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며, 잘쓴 글보다 나만의 글이 더 소중하다는 사실. 이는 비단 글쓰기 뿐만 아니라 잘 살기 위해서도 필요한 덕목들이지요. 좋은 글을 쓰기 위한 과정은 좋은 삶을 살아가는 과정과 비슷한가 봅니다.

먼저, 무엇을 하려고 할 때 세 번 생각한다는 것이다. 첫째, 이 일을 하면 어떤 점이 좋은지 생각한다. 둘째, 나쁜 점은 무엇인지 생각한다. 셋째,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 것인지 생각한다. 다음으로, 상대가 있는 경우다. 그때에도 세 번 정도 생각을 했다. 첫 번째는 이 사안에 대한 내 생각은 무엇인가? 두 번째,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무슨 생각, 어떤 입장일까? 세 번째, 이 두가지 생각을 합하면 어떤 결론이 나올 수 있을까?
와인이 부드럽고 깊은 맛을 내기 워해서는 숙성 기간이 필요하듯이, 글도 생각의 숙성 기간이 필요하다. 그러니 단박에 써 내려가지 못하는 것에 대해 조바심을 가질 필요는 없다. 생각이 안 나면 머리 어디쯤엔가 잠시 내버려둬도 좋다. 컴퓨터를 끄고 산책을 나가는 것도 방법이다. 때로는 며칠씩 묵혀두고 다른 일을 할 필요도 있다. 그러다보면 문득 떠오른다. 언제일지 모르고, 어느 장소일지도 모른다. 혼자 걷다가, 혹은 누군가와 대화하다가, 또눈 화장실에서 떠오를 수도 있다. 바로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붙잡으면 된다.
연애도 시작하기보다는 끝내기가 어렵다. 맺음말은 독자나 청중에게 남기는 마지막 인상이다. 많은 사람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처럼 마지막 말을 기억한다.(중략) 글쓰기의 재발견의 저자 마이클 민웰은 '빨리, 강하게, 깊이 있게'가 성공적으로 끝마치는 요령이라고 했다.
무엇이 되느냐보다 어떻게 사느냐가 더 중요하다. 모든 사람이 인생의 사업에서 성공할 수 없다. 하지만 원칙을 가지고 가치있게 살면 성공한 인생이고, 이런 점에서 우리 모두는 성공한 인생을 살 수 있다. 글을 잘 쓰려고 하기보다는 자기만의 글을 쓰는 것이 중요하다. 모든 사람이 글을 잘 쓸 수는 없다. 하지만 자기만의 콘텐츠와 스타일로 쓰면 되고, 이런 점에서 우리 모두는 성공적인 글쓰기를 할 수 있다.

 



2. 쓰여진 글은 남에게 읽혀질 때 가치가 있습니다. 너무 어려워서 읽혀지지 못하는 글이라면 글로써의 존재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읽혀지는 동시에 읽는 자들에게 아주 작은 부분에서라도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면, 그 글은 귀한 글이 되겠지요. 우리가 기억하는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의 글이나 연설은 "중학교 1학년, 2학년 정도면"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글이었으며 동시에 읽는 이들의 마음 안에 어떤 바람을 불게 하는 글들이었습니다. 소통을 무엇보다도 소중히 여겼던 대통령들의 심성이 그 글과 연설에 그대로 투영되어 있습니다. 내가 썼던 짧은 글줄들이 얼마나 혼자만의 자기만족에 빠져있었던가 뜨끔합니다.

꼭 글에만 관련된 것은 아니지만, 김대중 대통령은 독자와의 교감을 강조했다. "첫째, 반걸음만 앞서가라. 아무리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너무 앞서가지 마라. 따라오지 않으면 잠시 멈춰 서서들어라. 이해해줄 때까지 설득하라. 그래서 의견을 맞춰라. 읽는 사람이 공감하지 못하는 글은 아무 쓸모가 없다. 쓰는 사람 입장에서 읽는 사람을 배려해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아예 읽는 사람의 입장이 되어야 한다. 둘째, 손을 놓지 마라. 두세 걸음 앞으로 나서면 마주 잡은 손이 멀어질 것이고, 따라올 수가 없다. 늘 그들 안으로 들어가 읽는 사람이 무엇을 원하는지, 그들의 생각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나란히 가서도 안된다. 그러면 발전이 없다." 이런 생각은 1980년대 감옥에 있을 때, 앨빈토플러의 제3의 물결을 읽고 나서 든 것이라고 한다. 앞으로는 지식정보화 시대가 될 것인데, 이러한 시대에는 일사분란하게 끌고 가는 리더십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조금 달랐다. '국민의 눈높이'를 넘어 '역사의 눈높이'에 맞춰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승만을 찍어준 국민의 눈높이와 419혁명을 일으킨 역사의 눈높이를 구별해야 한다는 것이다.
글을 쓸 때에는 그 글을 읽을 사람이 누구인지, 그들이 무슨 얘기를 기대하는지를 의식해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에서 말했다. "말은 세 가지로 이루어진다. 말하는 사람과 말의 내용, 그리고 말을 하는 대상이다. 말의 목적은 마지막 것과 관련이 있다."
상대방이 내 말을 쉽게 이해할 것이라고 착각하지 않는 것으로부터 글쓰기는 시작되어야 한다. 그러니 무조건 알아듣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글을 쓰는 것이 좋다. 김대중 대통령의 충고다. (중략) 노무현 대통령은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간다. "글이라는 것은 중학교 1, 2학년 정도면 다 알아들을 수 있게 써야한다."...역사의 진보에 대한 노대통령의 정의, 즉 소수가 누리던 것을 더 많은 사람에게까지 확산하는 것. 그런 시각에서 보면 선택된 소수가 아니라 누구든지 이해할 수 있는 쉬운 글을 쓰는 것이야말로 역사 발전에 일조하는 길이다.
첫째, 당연히 쉬운 말로 써야 한다. 전문용어에 돼먹지 않은 알은 체는 자제해야 한다. 영국의 학자 FL 루카스가 말한 것처럼 사람들에게 멋지게 보이기보다는 사람들을 도와주겠다는 마음의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둘째, 명확하게 짚어줘야 한다.(중략) 쉬운 이해를 위한 세 번째 방법은 사례를 들고 비유를 하는 것이다...넷째 반복해줘야 한다. 세 번 정도는 반복해줘야 전달이 분명하게 된다고 한다...단, 이런 반복이 '강조'로 들리지 않고, 한 얘기 또 하고 또 하는 횡설수설로 들리면 곤란하다.

 



3. 좋은 글은 그 안에 허세나 낭비가 없어야 합니다. 짧으면서도 강하고 알찬 글은 그 글 뒤안에 오랫동안 농축되어 온 근거와 논리에서 비롯됩니다. 부지런한 자료준비와 치밀한 구성이 선행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마치 올림픽에 출전한 국가대표 선수처럼, 절차탁마의 긴 시간을 단 한 개의 문장으로 보여내야 합니다.

김동식 교수는 인문학 글쓰기를 위하여에서 이 같은 문제를 지적한다. "생각의 길이와 글의 길이를 서로 같게 한다는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 생각을 충분히 드러내기에 말이 부족하면 글이 모호해지고, 생각은 없이 말만 길게 늘어뜨리면 글이 지루해지기 마련이다." 오락가락하지 않으려면 세 가지가 명료해야 한다. 첫째는 주제다.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가, 나는 이 글을 통해 무엇을 전달하고자 하는가, 이 글을 읽은 사람의 머릿속에 어떤 말 한마디를 남기고 싶은가. 둘째, 뼈대다. 글의 구조가 분명하게 서 있어야 한다. 셋째, 문장이다. 서술된 하나하나의 문장이 군더더기 없이 명료해야 한다. 느낀 그대로, 아는 만큼 쓰자. 최대한 담백하고 담담하게 서술해나가자. 그러면 결코 횡설수설하지 않는다.
글을 쓰는 목적 중에 하나는 불확실한 것을 확실하게, 애매한 상황을 명료하게 정리하는데 있다. 그런데 이에 역행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미국의 국민작가 마크트웨인은 그랬다. "정확한 단어와 비교적 정확한 단어는 번갯불과 반딧불만큼이나 차이가 난다."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표현보다는 살면서 겪는 구체적인 말로 얘기해야 읽는 사람, 듣는 사람이 더 공감한다.  
누구나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것만으로는 글을 쓸 수 없다. 자료확보가 필수적이다. 소설가 김훈은 글쓰기의 최소원칙이란 책에서 좋은 글의 조건을 이렇게 말했다. "정보와 사실이 많고, 그것이 정확해야 되며, 그 배열이 논리적이고 합리적이어야 한다." 여기서 절반이 자료찾기와 관련이 있다. 많고 정확한 정보와 사실이 바로 그것이다. 글은 자신이 제기하고자 하는 주제의 근거를 제시하고 그 타당성을 입증해보이는 싸움이다. 이 싸움은 좋은 자료를 얼마나 많이 모으느냐에 성패가 좌우된다. 자료가 충분하면 반드시 그 안에 답이 있다.
독일은 동방정책을 추진하기 전에 주변국의 이해관계에 대해 면밀히 검토했는데, 그것을 정리한 것만도 2,000쪽에 달했고, 이것을 요약하여 27쪽으로 만들고, 다시 1쪽 반으로 요약한 문서로 만들었으며, 이것이 1989년 동구권 변혁의 밑거름이 되었다. 2005년 10월 3일 한겨레
독자나 청중은 긴 글이나 장황한 말 속에서 한 단어, 한 문장만 기억한다는 게 노대통령의 지론이다. 글을 쓸 때는 바로 그 문장을 찾아내어야 한다는 것이다.
조선 후기 명문장가 이덕무 선생은 이를 이렇게 얘기했다. "간략하되 뼈가 드러나지 않아야 하고, 상세하되 살찌지 않아야 한다."(한정주, 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노트) 에이브러햄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은 단 266개 단어였다. 이 자리에 함께했던 당대 최고의 웅변가 에드워드 에버렛른 두 시간 가까운 연설을 했다.(중략) 결국 아무도 에버렛의 말을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4. 글은 곧 그 사람일 때가 많습니다. 정치는 말과 글로 하는 것이고, 리더는 곧 그의 말과 글로 자신의 가치관과 철학을 천명하기에 리더를 선택할 때 그 사람의 글을 보아야 합니다. 거창하게 정치이야기까지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우리는 하루에 많은 말과 글로써 자기 자신을 내보이고 설득하고 설득당하며 살아갑니다. 말과 글의 힘이 약하다보면 때로 그 이외의 것들, 힘이나 권력, 지위 등으로 상대를 제압하려는 행동을 무의식적으로 하게 되는 건 아닌가 합니다.

"글은 자신의 가치관, 세계관대로 쓰는 것이다. 타당성만 있다면 튀는 것을 주저하거나 개의할 일이 아니다." 노대통령은 공직자를 기용할 때도 그가 쓴 글을 가져와보라고 했다. 저서나 신문기고글을 보고 판단했다. 노대통령은 정치권에도 이렇게 말했다. "자기 의제와 노선을 갖지 않은 정당은 몰락한다." 김대중 대통령도 비슷한 당부를 했다. "정치인에게는 그 사람 하면 떠오르는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첫째는 정책적 전문성이 필요하고, 둘째는 정치적 정체성이 필요하다."  
"정치에서는 이슈를 주도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타이밍이 중요하다. 먼저 이슈를 제기하고 경쟁하는 상대방이 그 이슈에 따라오면 그 게임은 이슈를 제기하는 쪽이 이길 가능성이 높다. 정치에서는 아침에 말을 했다면 주목 받을 말도 저녁에 하면 아무런 관심을 끌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또 우리 쪽 이슈라고 생각했던 것을 상대방에게 선점당하는 경우도 많다. 권투선수가 링에 오르면 상대방과 악수하고 눈인사를 하고 처음에는 잽을 날리며 탐색전을 벌인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생략하고 선방을 날리는 적극적인 자세도 필요하다"(최경환, 김대중 리더십) 아무리 잘 만든 정책도, 오랜 시간 고심한 인사도, 진심이 담긴 사과도 타이밍이 맞지 않으면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없다. 글도 발표하는 타이밍을 잘 잡아야 한다.
설득력이란 무엇인가? 바로 말과 글이다. 글 한 줄에 리더가 가진 정보와 생각과 지향을 다 함축해낼 수 있다. 또 진심이 담긴 말 한 마디가 구성원들의 마음을 움직여 조직이나 국가의 장래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지금의 리더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다. 정경유착의 시대도 막을 내렸고, 권력기관도 국민의 품으로 돌아갔다. 대통령이 권력과 돈으로 통치하던 시대는 끝났다. 오직 가지누것이라고는 말과 글, 그리고 도덕적 권위 뿐이다."...민주주의는 말이고 글이다. 말과 글을 통하지 않고 어떻게 문제를 해결하고 합의를 이뤄낼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민주주의 시대 리더는 말을 하고 글을 쓰는 사람이다. 리더는 자기 글을 자기가 쓸 줄 알아야 한다.

 


5. 가장 중요한 것은 가짜 글을 쓰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힘을 빼고, 자기 자신의 글을 쓸 것 그리고 동시에, 자기 자신으로 살아야 합니다. 논리성과 감수성과 인류애가 균형적으로 구현되어 있는 "인생은 아름답고 역사는 전진한다"같은 문장은 참으로 담담하면서도 한 개인이 살아온 삶의 방식 전체와 거대한 인류애가 균형적으로 농축되어 있는 글이지요. 

이태준의 '문장강화'에 나오는 다음 구절에 충실한 시작이었다. "글에서 첫마디가 길흉을 좌우하는 수가 많다. 너무 덤비지 말 것이다. 너무 긴장하지 말 것이다. 기히 하려 하지 말고 평범하면 된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에서 누군가를 설득하려면 에토스(인간적 신뢰), 파토스(감성적 호소력), 로고스(논리적 적합성)가 필요하다고 했다. 두 대통령이 남긴 말에서 이 세가지를 한꺼번에 본다. "인생은 아름답고 역사는 전진한다."

 



좋은 글을 쓰고 싶은 욕심이 항상 있습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좋은 글은 그 글의 주인이 되는 좋은 삶과 동시에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네요. 위에서 인용한 내용들 외에도 좋은 글을 만들어 내기 위한 연습과 노력, 관점에 대한 매우 다양하고도 실제적인 방법들이 담겨있습니다. 역사적으로 가장 깊은 문장들을 많이 남겼던 두 대통령의 펜대가 되었던 분이 알려주신 지침들을 속속들이 따르다보면, 내 글 뿐만 아니라 내 삶도 아름다워질 것 같고, 나를 둘러싼 이 작은 세계의 역사 역시 전진할 것만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