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카들의 성화에 끌려간 캠핑장에서 짬을 내어 읽은 [닥끌오재-닥치는대로, 끌리는대로, 오직 재미있게 이동진 독서법] 입니다. 작가님으로부터 영광스러운 친필 싸인을 받은 지 이년 만에야 읽게 된 데에 싸인에 사용된 네임펜에 유감을 표하는 바이며,
이 책을 읽고 닥끌오재 독서법에 관해 제가 이해한 두 가지의 맥락은 "무용(no use)의 독서"와 "넓은 독서"입니다. "무용의 독서", 즉 그 어느 것에도 소용됨이 없이 그 자체로 즐거움이 되는 독서에 대해 저는 전적으로 동의하고 있습니다. 어린시절부터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주장의 이유에 대해서 들어보면 대개는 다독으로 학습능력과 정보해석능력, 표현력의 향상같은 것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들 하지요. 실제로도 뛰어난 성적을 거두는 학생들은 다독가인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래서, so what, 어쩌라는 거지요? 월급쟁이로 살아본 경험에서 보면, 책을 많이 읽는 다독가라고 해서 반드시 일의 성과를 내는 업무능력자는 아니었으며 반대로 업무능력자가 반드시 다독가라고 할 수도 없는, 그 어떤 필요충분관계도 찾아볼 수 없는 관계가 독서와 먹고사는 일이었습니다. 과연 그렇다면 다독으로 수능점수를 높인다 한들 그게 먹고 사는 일에 있어서 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이쯤에서 좀 다른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제가 인간적으로 매력을 느끼는 사람들 중 꽤 많은 이들이 책을 좋아했고, 반대로 책을 좋아하는 사람치고 매력이 없는 사람은 보질 못했으니 책벌레와 매력부자는 확실히 충분관계에 있는 것 같아요. 그러나 매력이 부자여도 결국 먹고 사는데 직결되는 소용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이런 무소용에도 불구하고 제가 책을 읽는 이유는 단 하나, 혼자서 조용히 할 수 있으면서도 가장 재미있고 다채로우며 시간가는 줄 모르게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에요. 나의 고독을 가장 빛나게 해 주는 놀이입니다. 누군가에게는 그 놀이가 레고일수도, 요리일수도, 달리기 일 수도 있는, 그런 즐거운 활동이 제게는 책읽기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동진 작가님의 "무용의 독서론"에 대해 깊이 공감하고 있습니다.
"넓은 독서"는 도전해 볼만한 읽기의 화두입니다. 저는 인문, 자연과학, 철학, 경제서들은 멀리하고 유독 소설, 시와 같은 문학이나 역사서, 에세이들로만 독서편식을 하는 경향이 있는데, 어쩌면 타고나기를 마음이 심약한 탓에 남의 이야기와 지난 과거로의 현실도피를 좋아해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작가님의 표현대로 독서의 위대함은 읽던 분야의 책에 천착하여 계속 읽는 "좁은 독서"를 통해 나의 세계를 견고히 함과 동시에, 분야를 넓혀가는 "넓은 독서"로 또한 나의 세계를 무너뜨리는 데에 있다고 하니, 저 역시도 이제 그만 픽션 세계로의 현실도피를 끝내고 각종 인문, 경제, 투자 관련 책 읽기에 과감히 도전키로 결심합니다. 넓은 독서의 일종이라고 할만한 "전작독서", 즉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따라가는 것도 어디 놀러가는 여행계획이라도 세우는 듯 기분좋은 독서계획을 세우는 일이 될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좋아하는 이동진 작가님의 명저라고 다들 여긴다는 [밤은 책이다]로 전작독서 역시 계획해 봅니다.
나이가 더 들기 전에 돈벌기의 이치를 깨달아 보겠다는 의욕으로 각종 투자, 재테크 책 읽기에 몸과 마음을 한동안 불살랐었는데, 역시 저의 전공은 진지함을 속내에 감춘 시덥잖은 수다와 가볍고도 점잖은 우울감, 그리고 B급 위트로 버무려진 에세이입니다. 아무것에도 소용없는 행위를 극찬하는 에세이를 간만에 읽으니 편백나무 숲에라도 다녀온 듯 두뇌 속이 상쾌해집니다. 아직 손에 닿지 못한 책들을 읽을 생각으로 들떠보긴 실로 오랫만이에요. 오로지 닥끌오재 덕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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