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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하지 않겠다는 각오

나는 어릴 적 슈퍼마리오 같은 컴퓨터 게임을 하다가 내 뜻대로 플레이가 풀리지 않으면 그냥 꺼 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하곤 했다. 누군가와 연애를 하다가도 '이거 느낌이 별론데' 싶으면 가차없이 헤어지자는 선고를 내리기 일쑤였다. 친분을 쌓고 지내던 사람이 아니다 싶게 선을 넘으면 '이건 아니지’ 라며 은근하면서도 단호하게 그 선을 지우고 끊어버렸다. 얼떨결에 입사해서 18년을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도 아직도 하루에 2번은 습관처럼 이제 그만해야지 라는 생각을 한다. 말하자면, 나는 계속 끌어안고 버티며 나아가겠다는 결의보다는 습관적인 작별과 손쉬운 손절에 더 빠른 사람이다. 그런 내가 사랑이든 애도든 계속 나아가겠다는 마음을 단단히 먹었던 경우가 딱 두 번 있다. 한 번은 데려온 지 석 달 쯤 되었을 무렵..

읽은기록 2021.09.10

나의 새로운 반려자전거, “만추”(진주라이딩, 2017년)

드디어 주문한 전기자전거가 자전거포에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낮 2시 17분. 지난 주 연이틀 밤을 새며 근무한 바람에 24시간 자고 싶었지만, 불굴의 의지로 침대의 마수를 떨쳐내고 분기탱천. 쫄바지와 헬멧을 착용하고 가게로 향했습니다. 자전거, 전기충전기, 교체용 안장을 받아들고, 라이딩용 배낭까지 그 자리에서 구매하여 착장한 후, 척척 걸어나와 16km의 라이딩으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마흔을 곧 바라보는 늙은 딸은 늘 네로황제처럼 길게 누워 예능프로 섭렵하기가 유일한 취미였습니다. 그런 딸이 행여나 팔다리가 퇴화되어 카프카의 변신처럼 벌레가 되어버리지는 않을까 할머니가 된 엄마는 늘 걱정이었어요. 그러던 딸이 갑자기 자전거를 잡고 서너시간씩 돌아다니다 오니, 엄마는 그래그래, 그거라도 해, ..

가본기록 2018.10.14

곁에 있어줘, 라고 외치고 싶은(뮤지컬 프랑켄슈타인, 2018년)

프랑켄슈타인이라는 뮤지컬을 보았습니다. 프랑켄슈타인은 인간을 만들어 보겠다는 광기에 사로잡혀, 자기 친구 "앙리"를 죽게 만들고는 그 죽어버린 몸뚱아리를 재료삼아 생명부활의 실험을 합니다. 끼익끼익, 거대한 화덕같은 발전기가 돌아가더니 앙리가 부활합니다. 막상 앙리를 부활시킨 프랑켄슈타인은 그 부활의 기괴함에 당황하여 앙리를 다시 죽이려 합니다. 가까스로 탈출한 앙리는 자신을 창조하고 동시에 죽이려했던 프랑켄슈타인을 향해, 근원적인 그리움과 증오심의 양가감정으로 평생 그 뒤를 좇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그의 손에 죽임당하면서도 또한 그를 향한 복수를 완성하지요. 바로 프랑켄슈타인을 새하얀 북극에 세상천지 아무도 없이 홀로 갇히게 두는 것입니다. 북극에 갇힌 프랑켄슈타인은 자신이 창조한 피조물 앙리의 시체를..

가본기록 2018.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