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상황이 좋지 않았고 여유가 없어 주말 아카이빙을 중단하고 있었다. 유독 절기에 맞지 않게 추웠던 봄이었고 마음은 더욱 추운 시간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창 밖을 보니 갑자기 하늘에 팝콘이 달려있었다.

네가 어김없이 왔구나, 그 많은 우여곡절이 있던 이 곳에도.

설 연휴를 끝으로 중단되었던 러닝을 다시 해야겠다고 마음 먹은 이유도 바로 이 벚꽃 페스티발 덕분이었다. 벚꽃 터널을 달리고 싶어졌다.

석달 만에 재개한 러닝은 확실히 실력이 떨어져있다. 지난 1월 5km는 35분대로 끊었었는데. 다만 이번만큼은 나의 발목을 잡은 벚꽃 탓이라 해 두자.

흐린 날은 그레이빛 하늘과 톤앤톤으로 맞춘 모던벚꽃 컨셉이라면,
쨍한 날은 써니블루를 배경으로 투명한 빛을 내는 수채화톤 - 각자 그 나름의 아름다움.

여건이 되면 꼭 들르는 방앗간 두 곳이 있다.
하나는 까페 마르탱. 모르고 지나칠만큼 보호색으로 위장한 채 후미진 골목에 숨어있는 근사한 곳. OJAS의 스피커로 흘러나오는 재즈팝에 그레이 톤으로 일관된 차분한 실내와 레드 스트라이프로 엣지를 넣은 블랭킷까지,, 아니 이런 곳이!!





소리에서 그림까지 어느 것 하나 어긋남 없는 핏을 지닌 까페이다. 커피도 딱 그 매너로 적당히 좋다. 다만, 찰방찰방하던 커피가 찻잔접시에 다 쏟아져서 찻잔 바닥까지 커피 범벅이 되었는데 그냥 주시더라. 집에서 편하게 먹을 때도 가장 질색하는 일인데. 접시만 바꿔달라고 정중히 부탁했다. 서빙매너도 세련된 까페 핏에 맞춰주세요-


또 한 곳은 미분당. 대화를 자제해야는 산더미 쌀국수집으로 늘 웨이팅이다.

밖에서 조용히 대기하다가 호명되면 네! 하고 입장해서 옷을 벗어 벽에 걸고 바 테이블에 앉아 미리 키오스크로 주문한 음식이 나오면 먹으면 된다. 착, 착, 착, 효율의 극치와 대존맛의 콜라보.

첨엔 조용해서 좋았는데 가만보니 이게 빠른 회전율의 비결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갑자기 나타나서 박치기로 들이대는 턱시도.


턱시도의 앞뒤없이 돌진하는 사랑 박치기를 받으니 기분이 좋았지만. 안돼, 너 못데려 가. 이미 집에 애들이 있어. 밥은 먹었니? 지금 줄것도 없는데. 미안하고 귀엽네.
이런 날 집에 앉아 있는 것은 시절의 낭비이므로 읽을꺼리를 들고 근처 공원으로 이동. 벤치에 앉아 빵과 커피를 먹으며 챗지피티한테 개인과외를 받고 있는데 꽃잎 하나가 내 몸에 날아와 앉았다. 귀엽다.

맞은 편 주택가의 평안함을 보고 있노라니 뜬금 우리나라 좋은나라라는 국뽕에 급 감사 모먼트가 찾아온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갑자기 떠오른 느헤미야를 모처럼 통독 묵상했다. 느헤미야가 어두운 시대에 정치적 지도자였다면 에스라는 어두운 시대의 영적 지도자였고 각자의 자리에서 그 소명이 있었다. 식민지 민족 출신으로 페르시아의 고위 관료가 된 느헤미아는 소명을 제지하려는 모략과 음모, 제도권의 정치와 싸워야했다. 거대 제국의 압도적 힘 앞에서 그는 말해야 할 때를 알아 담대히 말을 했고, 듣지 말아야 할 말을 분별하여 듣지 않았으며, 해야 할 일을 정하여 좌고우면하지 않았다. "위대하고 두려우신 여호와를 기억하고 여러분의 형제와 자녀와 아내와 가정을 위해 싸우시오"(느 4:14). 그의 리더십과 결단력의 원천은 여호와를 기억함에 있었다.

어지러움 속에 분열이 가득했고 때로는 그 영향력이 나를 압도하기도 했다. 기도를 잃어버린 상태였으나 다행히 누군가의 격려로 다시 찾을 수 있었다. 인내로 주님의 역사를 이루고, 그 역사가 일반은총이 되어 이 세상에 임하기를 소망하자는 오늘 새벽 말씀. 그 과정 중에 있는 나의 모든 말과 행동 역시 오로지 하나의 기억에 중심을 두고, 톤앤톤의 일관된 방향성을 지켜내기를 바랄 뿐이다. 마르탱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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