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잦은 장거리 이동 때문인지, 열악한 호텔에서 객지 숙박을 연달아 한 탓인지, 눈이 오면서 차가워진 공기 탓인지 금요일 밤부터 인후통과 함께 몸살이 찾아와버렸다. 밤새도록 오한이 들어 벌벌, 자는 둥 마는 둥 밤을 보냈다.
그 와중에도 우리 고양이 2호의 건강검진과 스케일링을 하고 왔다. 우리 2호 고양이는 췌장 수치가 높고 송곳니에 구멍이 있어서 레진으로 때웠다. 발견 못했으면 흡수성병변으로 갔을 수도 있다고. 건강검진은 못해도 스케일링만이라도 꾸준히 해야겠다. 스케일링을 하면 어차피 기본 피검사까지 하게 된다.
우리 2호 고양이는 2살 무렵 6층 집에서 땅으로 낙상을 한 적이 있다. 발코니 문이 활짝 열린 채 2호가 보이지 않고 어디선가 아득히 냐옹 냐옹 울부짖는 소리를 듣는 순간 등에 한줄기 냉수가 흐르며 "떨어졌구나" 직감했다. 그 이후 계단으로 뛰어내려갔는지, 엘레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는지는 하얗게 지워져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디에도 눈에 보이질 않고 냐아옹 냐아옹 우는 소리만 들리니 나도 이름만 부르며 발을 동동거릴때, 길 건너 편의점 사장님이 "혹시 고양이를 찾냐"며 위치를 알려주셨다. 계산 포스에서 고개를 드는 순간 앞 건물 발코니에서 뭔가 휙 떨어지는데 처음엔 사람인 줄 알고 혼비백산 하셨단다. 쪼르르 기어가더라, 하며 가르쳐준 그 위치에 풀숲을 헤쳐보니 피투성이가 된 채로 나의 2호 고양이가 웅크려있었다.
어디가 부러졌을니 모르지 감싸서 데려가라고 사장님이 기꺼이 겉옷을 벗어주셨고, 나는 고양이를 싸안고 어찌할 바를 몰라 천리길 떨어져있는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는 다급히 병원을 수소문했고 너무 이른 아침이라 문을 연 병원이 없었는데 고맙게도 한 수의사님이 얼른 데려오라 하셨다. 병원으로 가는 내내 우리 고양이는 무지개 다리 저편으로 넘어가려는 숨을 힘겹게 잡고 있었다. 나와 일상을 같이 한 존재가 돌아올 수 없는 길을 오가는 장면을 처음 보는 나는 손을 벌벌 떨었다. 2주간의 투병과 우여곡절을 거쳐 퇴원하는 날, 수의사 선생님은 우리 고양이에게 "작지만 강한 고양이"라는 멋진 말을 해 주셨다. 작지만 강한 고양이가 이제 7살이다.
간신히 몸을 일으켜 고모 병문안을 다녀왔다. 항상 맵시있고 발랄했던 우리 고모. 가게에 딸린 작은 방이 전부였던 고모 집은 어린시절 나에겐 최고의 어드벤처 천국이었다. 방에 난 조그마한 창문을 넘나들며 뒤란을 오갔고, 나중에는 그 뒤란에 꼭 정글짐 같은 층층 집이 생겼었는데. 나는 종종 불쑥 학교를 마치고 고모네로 갔고, 그러면 고모는 뜨겁게 지져놓은 구들방 가장 안쪽으로 나를 들여보냈다. 고모는 쉬는 시간에 학교로 만두를 가져다 주기도 했고,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학교로 찾아와서 알려준 것도 고모였다. 시술 후 기력이 쇠해보이셨지만 여전히 정정하신 고모. 나의 어린시절 부모님 두 분의 형제가 많은 덕분에, 그리고 지금 생각해보면 어느 형제에게도 민폐가 되지 않게 두 분의 작은 세계를 단단히 일궈오신 덕에, 나는 고모 이모 삼촌의 사랑을 많이 받으며 컸다. 친척들의 사랑을 받은 기억 덕분에, 나는 그래도 낙관적인 세계관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오래도록 건강하시면 좋겠다.
몸이 점점 더 안좋아져서 예배를 드리면서도 너무 괴로웠다. 계속해서 한가지 더, 한가지 더, 끝날 듯 끝날 듯 말씀을 붙여가시는 목사님께 얼마나 짜증이 나던지. 그러면서 깨달았다. 아무리 금 같은 이야기라고 해도, 마음이 힘들거나 몸이 힘든 사람에게 계속 무언가를 이야기해봐야 당사자는 힘들겠구나.
벼르던 쌀국수 집에서 소고기 쌀국수와 나의 소울푸드 쏨땀을 시켜먹었다. 양이 너무 많아서 캠핑 냄비채로 먹은. 뜨끈한 쌀국수를 먹으니 잠시나마 오한이 멈추고 온기가 도는 것 같았다.
이웃집 찰스에 캐나다 출신 서명원 신부가 나왔고, 그 분이 꾸려가는 농부의 삶을 몰입해서 보았다. 나도 저렇게 자급자족 공동체를 꾸려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병든 닭처럼 꾸벅꾸벅 잠이 들어버렸다.
이렇게 무거운 몸으로 내일 새벽 출근을 감당할 힘이 도무지 나지 않아 서울 시내에 호텔을 잡았다. 강남을 조금만 벗어나니 이런 비즈니스급 체인호텔을 잡을 수 있다.
침대에 내내 누워있는 내 곁을 떠나지 않고 가만히 쳐다보던 우리 고양이. 이런 저런 짐을 한가득 챙겨 나서는데 야옹이들을 두고 나서려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언제쯤이나 우리 야옹이들과 온전한 일상을 함께 할 수 있을까. 정신없이 역마처럼 나돌아다니는 나를 만나 벌써 7살이 절반이나 지나버린 우리 고양이들.
밤 버스를 타고 오면서 손가락 하나까지 기력이 남지 않아 눈을 감고 왔다. 나의 육신은 이렇게 멈춰있지만 영은 온전하게 깨어있을 수 있을까. 오늘 서명원 신부님 말씀이 기억난다. 농사만 지으면 짐승(밭소)가 되고 글만 읽으면 도깨비가 되기에, 결국 상호보완적이어야 한다는. 육신과 영혼이 그런 관계인 것 걑다.
몸이 개점 휴업을 해버렸는데 영혼이라고 멀쩡할리 있겠냐만은,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은 여전히 그대로이심을 알고 있다. 그래서 목사님의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설교에 짜증이 나더라도 예배를 온전하게 지킬 수 있었듯. 육신이 멈추어도 내 안에 주신 지혜의 샘도 그대로이고, 존귀와 힘이 나의 의복되게 하신 것도 변함이 없다. 그리고 그것은 영원까지 변함이 없을 것이다.
아, 조금씩 몸의 기력이 돌아오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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