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새벽의 공기가 봄 답지 않게 차가웠다. 차가운 공기에 새소리가 가득했다. 역시 새벽은 새들의 시간이었구나.

그릇은 항상 싫증이 빨리 난다는 것이 문제인데, 무려 8년 전 우연히 구입한 나고미 식기는 조금의 싫증없이 여전히 애용하고 있다. 그러한 나고미 면기를 마트에서 팔기에 그 자리에서 3개를 추가로 구입했다. 역시 은근하게 예쁘다. 면기에 배달된 짬뽕을 담아 먹으니 마치 나가사키 바이브!


불행히도 이 짬뽕을 끝으로 더 먹지를 못했다. 지난 주 부터 새벽 생활을 시작했는데, 평생을 밤올빼미로 살아온 나에게는 아무래도 무리한 일정이었던 것 같다. 결국 병이 나버렸다. 꼼짝 못하고 침대에 붙어있는 집사 신세가 우리 야옹이들에게는 웬 떡이었을 것. 잘 보기도 힘든 거대 괭이가 한 자리에 가만히 있으니 우리 야옹이들도 덩달아 착붙이 되어버렸다.

다음날에도 여전히 쪼개질 듯한 두통은 가시지 않았다. 겨우 예배에 다녀온 후, 내리 침대에 붙어서 밀린 공부만 끄적끄적 거리다가 까무룩 잠이 들기만을 반복했다. 그 와중에 평소에 별로 뛰는 것 같지도 않은 친한 동생이 오늘 5km 마라톤을 35분에 뛰었다며 연락이 왔다. 이렇게 잘 뛰다니. 나는 일년의 트레이닝을 거쳐 겨우 해낸 일인데. 그동안 얕잡아봤군 😀 그러나 나는 이번 주말은 도저히 달릴 수가 없는 신세야 ㅜㅜ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너무도 심한 두통에 차라리 이대로 천국에 데려가 달라는 기도가 나올 정도였다. 심지어 내 일생 전체를 돌아보는 기도 - 1학년 때 학교 화장실이 무서워서 내내 오줌을 참다가 오줌보가 터지기 직전 싸버린 기억부터 시작해서 오늘의 내 상황에 이르기까지, 엄마의 기대에 맞춰 여기까지 왔지만 애초에 태어나기를 심약한 나는 내 일생 자체가 버거웠습니다 - 라는 기도를 눈물 콧물 범벅으로 하며 정신이 반쯤은 나가있는데, 머릿속에 퍼뜩 "소화제를 먹어보지 그래?"라는 생각이 스쳐가는 것. 바로 네 발로 기어가서 소화제를 먹으니 신기하게 사람 잡던 두통이 가라앉았다. 겨우 사과와 식빵으로 요기를 했다.

아무래도 새로 시작한 새벽 루틴의 여파가 큰 것 같다. 평일에도 한 시, 휴일 전날이면 새벽 서너 시에 자는 것이 예사이던 내 라이프스타일을 통째로 바꾸려니 그 어찌 거침이 없겠는가. 그러나! 내가 반드시 이 방해를 이기고 나의 새벽 작정을 끝마칠 것이다. 그리하여, 그 끝에서 기다리고 있는 "바라는 것들의 실상과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를 만나고야 말 것이다. 나는 약하지만 언제나 결심이란 것을 해왔고, 그 결심들은 매사 버거웠지만 그 버거움으로 나의 생은 이때껏 버티어졌으니. 이 귀여운 수달과 함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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