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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론스타처럼 투자하자, "부자의 계산법"(민성식, 2019.9월)

썸머에디션 2021. 12. 19. 22:54

회사에 입사해서 고군분투하며 몇 년의 힘든 시간을 보낸던 무렵, 친한 직원이 저한테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있잖아, 우리 회사를 움직이는 실체는 법도 아니도 보고서도 아니고 바로 숫자였어. 숫자로 움직이는 회사야." 저는 그 이야기에 무릎을 탁 쳤더랬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알 것 같았거든요. 왜 회사에 적응하는 그 시간이 그토록 힘들었는지, 왜 흰머리가 마른 들판에 들불 번지듯 돋아났는지를요. 숫자를 싫어하는 제가 숫자로 움직이는 회사를 다니고 있었으니 그렇게 흰머리가 나도록 힘들 수 밖에 없었던 겁니다. 회사는 투자를 해서 성과를 거두는 곳이고, 모든 투자의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끝은 결국 숫자일 수 밖에 없습니다. 부동산 투자도 예외는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개인적으로 부동산을 매입할 때 회사에서 하듯 투자의 타당성을 검토해보는지는 의문입니다. 그저 직관적으로(그러니까 흔한 말로 감에 따라서) "여기 오를꺼래" "여기 재개발 될 꺼래" 그리고 "대출 나올꺼래 " 등등 각종 “꺼래”정보를 바탕으로 머릿속에서 덧셈 뺄셈 몇 번하고 결정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간다면 취득세, 양도세가 어느정도 될 지 따져보는 정도지요. 회사에서는 투자의사 결정을 내리기 전에 반드시 투자타당성을 확인하기 위한 투자 심사 절차를 거치는데요, "부자의 계산법"이라는 책에서는 이와 같이 투자의사결정을 내리는 커다란 회사들을 "공적부자"("사적부자"의 반대되는 표현)이라고 일컫습니다. 개인투자자들도 공적부자들이 하는 것처럼 투자현금흐름과 비용의 지출, 수입현금흐름을 면밀히 계산하고, 목표하는 투자수익률을 정해서 투자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이에요. 그리고 친절하게도 저자가 직접 만든 개인용 투자심사 엑셀파일을 만들어서 설명하고 공유해줍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깨달은 한 가지 사실은, 제가 개인적인 투자를 함에 있어서 "매각스케줄", 즉 "언제 엑시트할 것인가"에 대한 고려를 하지 않았다는 점이었어요. 목표 수익률에 대한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설정없이 그저 좀 오르면 팔아야지, 하는 식의 투자를 했던 것 같습니다. 최근에 개인 사정상 이사를 하기 위해 부동산에 집을 내놓았는데 도통 집을 보러 오는 사람이 없어서 곤란에 빠졌었습니다. 사실 집을 팔 수 있는 기회가 올해 초중반에 몇 번 있었는데, 부동산 가격이 계속 치솟는 것을 보면서 조금 더 기다렸다가 팔자, 하고 망설이다가 매기를 놓쳐버린 것이지요. 그 바람에 정말로 이사를 해야 하는 때에 이사를 하지 못하는 난처한 상황이 생긴 것입니다. 하도 집이 팔리지 않아 유튜브에 "매도 타이밍"이라고 검색해보니 어떤 분이 그런 이야기를 하더라구요. 매도타이밍이라는 것은, 우리가 집을 매수한 그 순간부터 시작된다는 것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계속해서 매도자의 지위에 있다는 것을 간과하고 당장 집을 팔아야 할 시점에 임박해서야 매도 타이밍을 부랴부랴 찾는다는 겁니다. 매각 스케줄에 대한 고려가 있었더라면, "더 오르면 팔테야"하는 식의 뜬구름 잡는 결정이 아닌 적절한 시점에 매각을 하고 원하는 지역으로 다시 투자를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적절한 시점의 매각과 재투자를 통해서 끊임없이 쉬지 않고 새로운 투자를 이어갈 수 있었을 겁니다.


이 책에서 보여주는 대로 부자의 계산법에 따라 엑셀로 정리를 해 놓으면, 출구전략을 서서히 준비해서 어느 시점에 엑시트를 해야할지, 그리고 어느 정도의 대출이 적당하며 어느 수준의 자산으로 갈아탈 수 있을지, 여러가지 선택안 중 어느 쪽을 고를 지 단기적 안목이나 카더라에 의존하는 것이 아닌, 나의 라이프 사이클과 맞물려 돌아가는 긴 안목에서 관리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시장이 좋을 때와 나쁠 때의 시나리오를 짜는 법, 이 과정에서 흔히 간과하게 되는 세세하지만 큰 비용들, 즉 각종 세금과 중개수수료, 재산세나 수선비 같은 유지비용들에 대해서도 고려하는 관점을 갖게 됩니다.



순식간에 몇십억 만든 자산가들의 무용담을 담은 비기(祕技) 같은 책들보다 훨씬 더 유용하고 실제로 활용가능한 책이라고 생각됩니다. 엑셀이 사용법이 쉬운 프로그램이기는 하더라도 실제 활용할 수 있는 템플릿을 만드는 것이 상당히 수고스러운 일인데 저자가 친절하게도 좋은 템플릿을 만들어서 공유하는 덕분에 저의 필요에 따라 적절히 변형 활용할 수도 있을 듯 합니다. 시간을 내어서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대로 저의 모든 자산 운용 현황과 향후 계획을 엑셀로 정리해 볼 계획입니다. 투자의 처음과 끝은 결국 숫자입니다. 그리고 오늘의 숫자에 내일의 답이 들어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우리도 공적부자 론스타처럼 투자합시다. ㅎㅎ